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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Jul 31. 2021

기억이 사라지는 일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육신은 온전한데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면 어쩌지? 나이가 들수록 없는 기억력이 치매급 수준이라 걱정이 많던 찰나.


지하 2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 4층 할머니가 타고 계셨다.

 

“할머니 올라가시는 거죠?”

“아.”

씨가 다 보이는 자두를 한 손에 들고 계신 할머니. 오늘은 웬일인지 명찰이 없다. 4층 버튼을 누르고 우리 집 5층도 꾹!

 

“할머니 내리시면 되세요.”

“아. 같이 가면 좋겠는데.”

“할머니 같이 가드릴까요? 유한아, 조금 기다려.”

“할머니 어느 쪽이세요? 402호? 403호? 어디로 들어가세요?”

“아.”

“할머니, 402호 문이 열려있는데 여기 맞아요?”

 

할머니가 살짝 열려있는 문을 실수로 닫아 버렸다.

 

“할머니 혹시 번호 아세요? 아니면 카드 있으세요?”

“없는데”

 

긴 문장을 정확하게 말씀하시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

“유한아, 이리 와봐. 할머니가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으니까 잠깐 여기 있어 봐.”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처음엔 의심스러운 말투이더니,

 

“할머니 성함이 김금희 할머님 맞으세요?”

“할머니, 김금희 맞냐고 물으시는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응. 김금희”

“네 맞다고 해요.”

“잠시만 전화 끊고 기다려 보세요.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전화하라고 할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몇 분을 할머니, 유한이, 나 셋이 기다리고 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통화해 보시겠어요?”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윗집 입주민인데요.

할머니가 이름표를 두고 나오신 것 같은데 어쩌죠? 들어가고 싶어 하세요. 번호를 좀 알려주세요.”

“휴, 집에 있으라고 하니까…. 12345# 눌러보세요.”

“아. 열렸네요. 할머니 잠시 바꿔 드릴까요?”

“됐습니다.”

“네. 그럼 할머니 들어가시는 거 보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 들어가 계시고 나오실 때는 명찰 꼭 챙기세요.”

“내가 어디다 둔 건지, 왜 놓고 나왔지.”

 

땀이 한 바가지. 아이와 5층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와 생각해보니 이건 뭐지? 처음 할머니를 뵈었을 땐 명찰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나 공동 현관 앞에서 종종 만났을 땐 ‘안녕하세요’ 짧은 안부를 건네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 목에 이름이 쓰인 명찰이 걸려있었다. 할머니가 안 좋아지셨구나. 싶었는데 이젠 서로 간에 의사를 전달하는 일조차 힘에 겨운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혼자 계실까?

상태가 나빠졌다면 누군가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전화를 기다리던 내가 오히려 아드님께 전화를 걸어 할머니를 걱정했다. 감사의 말을 듣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어찌나 무뚝뚝하고 귀찮은 투든지 전화를 걸었던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중 누구 집에 자신이 있는 줄도 모른 상태로 그저 눈만 끔뻑거리고 계셨다.

 

요새는 알츠하이머도 단계별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경증이었을 때 센터를 다니셨다면 조금은 천천히 진행됐을 텐데 할머니는 늘 혼자 그렇게 오르고 내리고 공동 현관에 앉아 계시거나 집 앞 벤치에 앉아 멍하게 계셨다.

 

지금은 소통이 힘든 단계. 그렇다면 누군가는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찰도 없이 나갔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찾기도 힘들 텐데 무뚝뚝한 남자는 별걱정이 없는 걸까? 그는 누구였을까? 사위? 아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 생각이 머릴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장 걱정이 되는 게 바로 건강이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게 알츠하이머.

내 기억이 온전히 있지 않은 상태. 건강한 몸으로 잘 먹고 잘 걷지만, 정신이 내가 아닌 상태.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선 뭐가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도 서지 않을 텐데 그땐 몸뚱이가 짐일 텐데 그것조차도 알 수 없는 무서운 상태. 할머니는 어떤 젊은 시절을 살아오셨을까?

 

무뚝뚝한 남자를 원망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하니까. 단지 그대로 혼자 내버려 두는 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뿐. 기억력이 못마땅하게 좋지 못한 나도 그런 상상을 종종 한다. 몸은 건강하게 있되 정신이 없는 상태.

 

아빠가 전에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지경이 되면 알약 하나 먹고 딱 죽었으면 싶다.”

 

7년 전인가 한참 ‘행복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희망적인 책을 쓰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하던 최윤희라는 방송가 겸 작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부가 동반 자살을 했다. 원인은 극심한 고통을 주던 불치병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심리가 불안해지고 아침마다 땅으로 꺼지는 듯한 몸을 느낄 때마다 무기력감이 들곤 한다. 제아무리 성격이 긍정적이라 한들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인정하자. 인정하자 해놓고는 잘 안 된다. 내게 오는 무기력감을 글쓰기로 치유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끄적끄적 적다 보면 어느새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기들을 보며 그래도 잘살고 있구나. 하는. 자가 치유의 방법이랄까.

 

힘들 땐 억지로 웃지 말자. 남을 위하기 전에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 힘든 삶을 극복해보려고 억지로 웃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것도 정신이 온전히 붙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일. 어찌 보면 알츠하이머는 참 잔인한 병이다.


내가 있는데 없는 상태. 나는 있는 걸까? 없다고 해야 할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남 일 같지 않다는 것. 나도 나이 먹어 가나 싶어 조금은 울쩍스러운 날, 르네 마그리트의 데칼코마니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 11. 21. ~ 1967. 8. 15. 벨기에 레신

벨기에의 화가.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고, 처음에는 키리코풍의 괴상한 물체 풍경을 그렸다. 1936년경부터 이미 데페이스망보다도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후의 팝 아트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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