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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Aug 06. 2021

책 읽어주는 엄마에서 글 쓰는 엄마로

짐 데일리 Jim Daly/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짐 데일리 Jim Daly/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는 나를 위해 이런 문장을 적었던가? 그리고 쓰고 무언가 끄적거리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20대부터 내 마음을 줄곧 붙잡고 있는 문장. 생각해보니 나는 꿈을 접었던 적이 없었다. 나보다 우위에 둘 수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잠시 잊었던 것뿐이다.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학원 근처 카페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망고 주스를 시켰다. 내 커피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심장을 죄어오는 카페인을 피하고 싶던 날. 아이를 기다리며 네이버에서 출간 기획서를 뒤적였다. 어떤 기획서를 써내야 내 원고를 보게 될까? 근거 없는 자신감만 빵빵하게 부풀려 있는 지금 내 상태. 거절당해도 쫄지 않을 자신이 있다. 도전하는 것 자체에 매직이 숨어 있다고 믿는 나다. 작은 도전은 성공을 만들어낸다고 자부하는 나다. 연습장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컨셉을 적어 본다.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타겟층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예상 페이지는, 경쟁 도서까지 훑어낸다. 차곡차곡 쟁여놓은 출판사 리스트 옆에 메일 주소를 덧붙여 놓는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건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데 왜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 동네마다 도서관이 생겼고 원하는 도서가 모두 구비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읽을 책은 충분히 많다. 그리고 책은 끊임없이 출간된다. 글쓰기를 해서 작가가 되는 일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 그런데도 전 세계 독서율을 보면 세계 1위는 85.7%라는 압도적 수치를 자랑하는 스웨덴이다. 특히 스웨덴은 여성 독서율이 높은 나라기도 하다. 55~65세 독서율이 93.4%라고 하니 자식을 다 키운 노년에 종일 책을 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 부모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2002년 파리에서 가장 눈에 띄고 부러웠던 건, 그래서 선진국이구나 하고 깨달았던 사실이 바로 동네마다 있던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그네를 타거나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많은 엄마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일상이 독서구나 싶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파트 단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들이 벌써 수군댄다. 유별난 엄마로 낙인찍히는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아 책은 주로 집에서, 카페에서 또는 여행지에서 읽게 되었다.

 


요새 같은 경우는 모든 환경이 미디어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전자책, 오디오북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종이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게 취미인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가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다. 책을 넘겨 읽는 맛이 좋은 걸 어쩌나. 손에 쥐고 있는 책이 주는 뿌듯한 무게감. 지식의 허영덩어리라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맛! 어릴 적부터 본 그 맛을 잊지 못해 여전히 종이책과 함께 살고 있다. 유한이에게도 그 맛을 들이게 하느라 집안을 온통 다양한 책으로 꽂아두고 벽에 붙여두고 전시 놀이도 하고 바닥에 책 길을 만들어 밟고 놀기도 했다. 읽은 책들은 한쪽 벽에 쌓아두면 그 위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음식점엘 가면 휴대폰을 쥐여 주는 대신 작은 책을 챙겨가 심심함을 달래게 했다.

유한이가 거품 목욕할 때는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기도 했는데 초등 4학년이 된 지금도 그때처럼 책 읽어주기를 바란다. 글 밥이 늘어버린 이후론 목이 너무 아파 자주 거절하고 만다.(해리포터를 모두 읽어주기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부러 애쓴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한이가 초등 학교생활을 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학교 방식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맘 한편엔 다 걷어치우고 초등학생 동안은 좋은 책들을 계속해서 읽고 쓰고 말하게 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기도 하다. 시킨다기보다 그저 자유롭게 마음껏 읽게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자. 미취학 때는 시골 학교나 대안학교를 찾아보기도 했다. 시골 학교도 요새는 별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 손에 휴대폰, 게임이 최고의 친구인 건 어쩔 수 없는 세상이라.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신랑을 혼자 두고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먼 곳에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가자니 뭣이 먼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학교 교육을 받는 이상, 국어 교육이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 뿐. 모든 습관은 집에서. 문제풀이식 수업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의 독서로 다져진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학교 교육의 차이가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로 만들게 빤하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도 독서가로 성장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고. 학원 뺑뺑이 돌 시간뿐인 아이들이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을 틈이 있기나 할까. 책 읽는 시간도 계획표에 따로 마련해야 할 만큼 요새 아이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그 바쁜 하루에 책 읽으라고 독촉하는 일은 어쩌면 책을 계속해서 밀어내게 하는 나쁜 독서환경이 아닐까. 아이스크림 한 손에 들고 엄마 옆에 앉아, 원하는 책을 읽고 있는 유한이가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어릴 때 그 책 맛을 알게 될까? 책을 읽을 때만큼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차분해지고 안정되는 그런 맛. 비누 거품과 함께 보골보골 피어오르는 엄마 목소리의 맛.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기억하는 그런 습관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습관에 엄마의 향기가 배어있다면 싫어하게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엄마만이 줄 수 있는 돈 안 들이는 쉬운 추억 만들기. 독서, 책 읽어주기.


나는 요즘 책 읽어주는 엄마에서 글 쓰는 엄마로 거듭나려는 중이다. 내 책이 정식 출간되면 아이가 계속 쓰고 있는 주제글을 묶어 출판사를 찾을 예정이다. 엄마 작가, 아들 작가.

생각만 해도 이것보다 뭣이 좋은디?


"엄마, 오늘도 거품 목욕할 때 책 읽어줘."

"오키."


짐 데일리
짐 데일리 Jim Daly

1940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출생~
감성 가득한 그림을 주로 그리던 짐 데일리는 어린 시절 여러 주로 이사를 다녔다고 해요. 그때의 다양한 경험들이 그림에 차곡차곡 묻어납니다. 3년간 군대에 있을 때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동하며 져본 적이 없다고 하니 그 투박한 손으로 어떻게 이런 섬세한 감성을 끌어낼 수 있었는지 감탄을 자아냅니다. 결국 간절한 꿈은 이루어지나 봅니다. 어린 시절 꿈인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아요. 색이 바랜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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