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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Aug 19. 2021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

Gustave Caillebotte/Paris Street Rainy D

Gustave Caillebotte/Paris Street Rainy Day

하얗게 불태운 하루. 눈을 감고 누우니 오히려 환한 어둠이 밀려왔다. 내게 요즘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네. 이게 무슨 일이야. 한꺼번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 건가. 정말 하려던 걸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 나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는 걸까? 어느새 까만 걱정들이 눈두덩이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혼자 글 쓰고 혼자 출간 기획서 써보고 혼자 뭐든 해볼 거야.라고 자만했던 시간을 글로 남기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자만했던 시간들. 사실 부끄러움,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로선 당연한 자기 방어기제였다.


방어 기제 defense mechanism, 防禦機制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것 말곤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하나씩 나를 분해해 보는 일. 그건 쉼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비움 또는 멈춤이란 단어로도 쓰인다. 나만의 퀘렌시아, 그 속에서 나올 때가 된 모양이다.


내게 생기는 모든 현상들,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로 인해 도슨트가 되고 노선생님의 함께 해보자는 권유가 없었다면, 송선생님의 넓은 인맥과 살뜰한 케어가 없었다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을 일이다. 좋은 분들을 만나 수저만 얹고 가는 내가 그래서 더 성실해 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들께도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감사하고 우리의 팀명처럼 ‘솜털 씨앗’이 움트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되면 선생님들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나 혼자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 내 간절한 바람에 선생님들이 숨을 불어넣어주고 계신다. 열심히 살아보라고. 꿈을 놓지 말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고.


요 근래 어제만 해도 몇 가지 일이 한꺼번에 내게 벌어진 건지 때아닌 소나기는 아이와 치과를 다녀오는 동안 거세게 내렸다.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리는 동안 매미가 울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비를 피해 갈 순 없었겠지만.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왜 싫지 않았던 걸까? 무겁게 장을 본 가방은 다 젖었고 아이가 내 거울처럼 홀딱 젖어 있던 순간에 나는 젖은 진동을 느꼈다. “여보세요.” “아. 분과장님 저 수원문화재단 OOO 주임입니다.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분과장님이 수원시민협의체 분과장 대표를 맡아주셨으면 해서요.” “네? 지금 밖이라, 그리고 소나기라 퍼붓고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조금 크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수원은 올 12월에 최종 심의를 거쳐 문화도시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시민의 주도하에 문화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성숙한 태도가 반영되어 수원시민 협의체 ‘나우어스’가 만들어졌다.


수원시 문화도시 운영위원회 위촉직은 2년. 위원회 안건심사 시, 시민리더를 포함해 회의를 진행한다. 법정문화도시 조성계획 내 시민리더 의견 반영을 위한 자리기도 하다. 선생님들과 그동안 뱉어냈던 수많은 아이디어를 수원시장님께 전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대로 버리기에 아까운 아이디어 하나를 실행해 보자고 선생님들과 서류 작업을 해 ‘시티플레이어’에 도전을 했다. 지원금은 300만 원. 예산을 잡다 보니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게 실행이 된다면 그 어떤 사업보다도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비슷한 사례가 한 건 나왔다. 2018년도에 다른 도시에서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 기사를 찾았다. 물론 우리는 그런 내용을 모른 채 아이디어를 냈고 어른의 기준에 맞춰진 각도를 어린이로 바꿔 생각하니 더 근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요새 내 상태가 계속 이렇다. 무조건 할 수 있는 건 도전! 서류 작업을 할 때도 선명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실제로 이게 만들어지면 어떨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자꾸 드는 건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어느 선에서 ‘뚝’ 하고 잘려나갈 수도 있으니 왔을 때 타야 한다. 열심히 하다가 잘 안되더라도 아쉽기는 하겠지만 후회는 별로 남지 않게 된다. 즐기자.


그렇게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할 일들을 끝내 두고 드디어 내 본캐로 돌아왔다. 출간 기획서를 꺼내, 또 다듬고 샘플 원고를 들여다본다. 완성 원고가 아니라 콘셉트에 맞춰 샘플 원고만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 중 완성 원고를 요구하는 곳엔 아예 투고를 하지 않았다. 내 원고를 출간 계약도 없이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다. 이게 무슨 배짱인지... 아무튼 완성된 원고도 사실 없기도 하고. 하하~


대형 출판사 몇 군데에 정성스럽게 출판사 스타일에 맞게 내용을 작성하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어찌 된 일일까? 의례 있는 일일까? 그렇게 쉽게 메일을 보내오는 것이었던 것이었을까? 나만 받은 건 아니겠지? 대형 출판사 한 곳에서 어제 보낸 내 메일에 답변을 해왔다. 이 출판사는 원고 검토가 보통 3주 이상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건 뭐지? 기획회의를 거쳐 다음 주 중으로 출간 여부를 결정해서 답변을 주겠단다. 아~궁금하다. 다른 투고자들도 같은 메일을 받았을까?


"요즘 애들이 일을 열심히 하네" 신랑의 톡 메시지였다.


다른 출판사는 메일을 잘 받았다는 연락과 검토하는데 2~4주가 걸린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고 아직 연락이 없는 곳도 있는데 내 책을 출간해주려는 걸까? 아니면 혼자 잔뜩 꿈에 부풀어 있는 걸까? 누군가 구름 위에 나를 얹어두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기분. 요즘 내 기분이 딱 그렇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3년이 내겐 있었으니까. 뭐든지 혼자 할 수 있다고 빗장을 걸어 잠겄던 시간 속에서 많은 귀인들이 나타나 열심히 살라고 응원해주는 시기. 마치 모네가 그림 그리며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작품을 사주고 전시회 후원을 해준 것처럼 나는 요즘 내 주변에 구스타브 까유보트가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모네의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의 그림을 사랑하지만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하고 있다. 그의 그림엔 얽매임이 없다. 프랑스 상류층에서 태어나 변호사 면허까지 취득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스마트한 사람이었을 거다. 게다가 여유롭기까지 하니 특별히 그림에 빛을 투과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평범하게 그려나간 그의 일상 그림 중 한 점이 우리 집 거실에도 걸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 게다가 파리의 비 오는 거리라니 한 점 걸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아무리 재주가 좋은 작가라도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힘이 크다. 친구들을 위해 그림을 사고 수집해,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그처럼 내게도 언젠가 지금 보다 영향력이 생긴다면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을 구하고 작품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처럼 천천히 하나씩 차근차근,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조금 설렁설렁 주변도 살펴가면서 가도록 해야겠다. 모든 일엔 다 의미가 있듯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일찍이 생을 마감한 그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세상에 존재해줬다는 이유만으로 참 감사한 마음이 더 큰 오늘이다.

Gustave Caillebotte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년 8월 10일 - 1894년 2월 21일)는 프랑스 초기 인상주의 화가로, 사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다른 인상주의 화가에 비해 사실주의에 기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다른 인상주의 화가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구스타브는 인상주의의 중요한 후원자 중에 한 명이었다. 인상주의 작품 전시회의 후원을 비롯해서 모네, 피사로, 르느아르 등 당대의 아직 화가로써 성공하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을 매입하여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_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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