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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Aug 11. 2021

아이의 건강검진

메리 카사트 MaryStevenson Cassatt

메리 카사트 (Mary Stevenson Cassatt)/ Mother Berthe Holding Her Baby. 1900년 작.

집 앞에서 82-1 버스를 놓쳐 터미널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오니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든 선선함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아직은 여름이다. 마스크 안으로 차오르는 땀을 닦으며 터미널 앞. 81번 버스를 타고 수원중*병원 앞에 내렸다. 아이와 손을 잡고 신호등을 지나가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걸 깨달았다.


벌써 10년도 전에 이곳 장례식장에서 꼬꼬마 시절 친구 한 놈을 보내고 왔던 생각이 났다. 단돈 몇십만 원을 빌려주고 그걸 돌려받아 내게 더 큰 상처로 남은 사건. 친구의 장례가 끝나고 난 다음 날, 친정집 베란다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나는 걸 보고 동생들과 나는 꼭 그 친구가 인사하러 온 건 아닌가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병원에 유한이는 매년 건강검진을 하러 온다. 그럴 때마다 내 시선은 가장 먼저 장례식장에 가 있다.


발열 체크를 하고 휴대폰을 꺼내 흔들흔들 QR코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출입기록을 남기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 “건강 검진하러 오셨죠?”

“네” “3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자동차 사고 환자로 돈을 번다는 병원, 나도 20대 후반에 차 사고로 이곳 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날이 주차장만 커지고 병원 내부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칙칙한 인테리어. 아픈 곳을 치료하러 왔다가 더 병을 얻어 갈 것 같은 인테리어를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허나, 나의 목적은 아이의 ‘건강검진’. 이상 없이 크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그만. 요새는 서류도 자동으로 학교로 전달된다니 참말 편한 세상이지 싶다.


“소변 검사부터 할게요. 중간 소변을 받아서 이 스틱에 5번째까지 적셔 오면 됩니다.” 이제 4학년이라고 화장실에서 뒤처리까지 다 하고 나오는 거 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작은 찰나의 순간, 아이의 뒷배경을 뽀샤시 처리하는 나를 발견한다. 왜 이리 예뻐 죽겠는지. 청력 테스트 이상 없음. 몸무게는 표준보다 찐 상태. 아~그런데 괜찮다. 1년 사이 키가 10㎝가 자라 있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크게 태어나 초등학생이 되며 또래 보다 한참이나 작은 키를 유지하더니 ‘올해는 좀 큰 것 같네.’ 정말 컸다. 그것도 10㎝나. 그러느라 밤새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이 아프고 그랬구나. 걸음걸이가 이상해 매일 밤 그렇게 아프다는 게 아니었구나. 라벤더 오일 쓱쓱 발라 조물조물 주물러 주길 잘했네. 병원에 들어와 처음으로 칙칙한 인테리어가 환해 보이던 순간이었다. 10㎝~세상에나. 그래도 표준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별로 상관없다. 계속해서 크고 있다는 점이 엄마는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엔 시력 검사. 예상대로 1년도 안 된 사이 시력이 또 떨어졌다. 가림 치료를 받았던 왼쪽 시력은 난시가 심해 그렇다 치자. 오른쪽 근시의 단계가 또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눈은 나쁜 쪽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어머님, 안과 한 번 가보셔야겠어요.”


키가 10㎝나 컸으니 시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모든 검사가 끝났다. 81번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시력이 떨어진 일보다 10㎝가 컸다는 기쁨이 더 커서 조금 선선한 그늘을 찾아 걸으니 아이도 좋아한다. 유난히 차멀미가 심했던 나를 닮아 자동차를 타든 버스, 택시를 타든 멀미를 다는 일이 다반사인 아이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아니라면 주로 걷기를 원한다. 집에서 재택인 신랑은 더울 때 걸어 다니면 쓰러진다고 늘 그렇듯 걱정 인형을 꺼내놓지만 우리는 신나고 씩씩하게 걸어 안과에 도착했다. “유한이 렌즈 바꾼 지 얼마나 됐어요?” “작년 가을쯤 바꾼 것 같은데 1년은 아직 안 됐어요.” “왼쪽은 난시가 심해 렌즈도 비싸고 아직 더 써도 될 것 같으니 오른쪽만 바꾸시면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성장하는 시기에 시력이 떨어지는 일은 흔한 거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요.” 유한이 6살 때 가림 치료를 했던 밝*미소 안과 원장님은 꼼꼼하고 친절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 느낌 덕분에 안과는 이곳만 단골이다. 그렇게 선생님이 챙겨주신 처방전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유한아, 오늘은 많이 걸어서 힘들 수도 있으니까 안경점엔 다른 날 가자. 간식만 사서 집으로 고고”


안경점 앞 대형 마트에 들러 1000밀리 우유 두 팩 한 묶음을 사서 나오니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여 곳으로 갔다. 달콤하고 향긋한 버터 향이 구운 지 얼마 안 된 모카 번을 가리켰다. “유한아, 우리 이거 먹어보자. 팥빙수도 하나 사서 갈까?” “팥빙수도 싸 갈 수 있어?” “방법이 있지” 한 번도 내 돈 내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그러니까 단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아이스크림 팥빙수. 그걸 찾아 단지 안에 있는 G*편의점엘 들어갔다. “있다 있어. 이걸로 엄마가 맛있는 팥빙수 해줄게.”


한낮은 여전히 여름. 그 여름의 길을 따라 우리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손을 닦고 팥빙수는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신랑에게 아이의 성장에 관해 얘길 해주었다.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고 시력은 크면서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특별히 기뻐할 일은 아이가 1년 사이 10㎝나 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걱정 인형이 백만 개 장착된 신랑을 안심시키고 팥빙수를 만들었다. 아니, 팥빙수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움푹 파인 커다란 그릇에 팥빙수를 소복하게 담고 우유를 붓는다. 그리고 신랑의 아침 대용 선식 가루를 넉넉히 뿌려 테이블 위로 가져간다.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나는 모카번과 함께.

“엄마 모카번 진짜 맛있다. 팥빙수도 엄마가 해주니까 더 맛있어.” 평소 밖에서 외식하자고 해도 별로 반기지 않는 아이는 엄마표를 좋아한다. 엄마 물, 엄마 된장국, 엄마 스파게티, 엄마, 엄마…. 귀찮을 때가 있긴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 아이 성향이 그러니. 밖에서 파는 완제품 팥빙수에 우유와 선식만 넣었을 뿐인데 엄마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다니. 감사한 일인지 희한 해할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긴 여정에 이 정도면 카페 부럽지 않았다.


아이가 검진하는 동안 나는 한쪽에서 혈압을 체크하고 있었다. 결혼 전 나는 줄곧 저혈압이었다. 아이를 임신하며 정상혈압으로 변했고 출산 후 역시 정상혈압을 유지했던 터라 혈압에 대한 걱정은 지우고 있었다. 85, 52 또다시 저혈압. 그나마 출산 전보다는 높은 수치였다. 두 번을 반복 체크를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혈압 좀 올려줄까?’ 하던 신랑의 말이 떠올랐다. 혈압 오를 일이 없는 생활일까? 왜 또 저혈압인지. 아이를 키우며 내 성장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다시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시작되며 정신을 놓듯 건강도 놓고 있었더니 역시 어딘가에서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성장하고 건강을 잃으면 하나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아이의 성장에 기뻐하듯 내 건강을 돌보는 기쁨도 곧 찾아야겠다.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간헐적 단식이란 것을 3일째 하고 있다. 꼭 정상으로 회복하리라.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까.






메리 카사트 Mary Stevenson Cassatt

 1844년 5월 22일 ~ 1926년 6월 14일

메리 카사트는 미국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였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에드가 드가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되며 이후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게 되죠. 1894년까지 판매한 작품 덕에 파리 근교에 거주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내며 작업했습니다.

그녀가 그린 '어머니와 아이'라는 주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성모자상과 그녀의 조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 사회상을 반영하는 그림이기도 하죠. 당시 사회는 모성애가 강하게 요구되는 사회였고 아동을 기르거나 보호하는 것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난 후의 삶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하죠. 그 아름다운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빠르게 흐르는 내 시간에 느리게 쫒는 꿈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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