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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Nov 18. 2021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View from the Painter's Studio/ 1805~6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세상을 가을로 물들이는 날, 그러니까 몹시도 화창한 가을날. 한창 프랑스의 이야기에 목마르던 9년 전을 떠올린다. 아이가 2살이던 때, 내 인생 세 번째 대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불어불문학과 3학년. 학비는 저렴한데 혼자 공부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졸업하기가 어렵다고들 했다. 별로 상관없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절실해야 일을 저지르는 타입이고 저지른 일에 대해선 나 나름의 기준으로 열심히 했으니까. 혼자 하는 일도 아주 재미있게 하는 편이다. 아니, 혼자 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하는 편이라고 해야 맞겠다. 인생이란 것도 어차피 내가 살아내야 할 일이지 않나.


프랑스어를 잊어버리는 게 아쉬웠다.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몇 군데 웹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던 터라 한 학기 40만 원가량의 학비는 혼자서도 가능했다. 3학년으로의 편입, 총 4학기 160만 원이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 졸업 논문이 남아 있어 많은 사람이 논문에서 중단하는 때도 있다고 했다. 논문을 대체할 방법이 있었다. 프랑스어 자격증을 따면 논문이 자동 패스가 됐다. 프랑스에서 3년을 살았지만, 유학을 다녀온 지 어언 10년. 강산이 빠르게 변하는 시간보다 뇌의 노화 속도가 치매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때, 나는 자격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에 출제될만한 문제들을 유형별로 묶어서 공부한 지 3개월 만에 한강 근처 어느 중학교에 가서 근 20만 원가량의 응시비를 내고 시험을 봤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총 4 과정을 정해놓은 점수 이상 받아야 자격증이 발급된다. 프랑스 교육부 산하 기관인 France Education International에서 발급이 되는데 높은 점수로 합격하고 자격증을 받은 기분이 참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아주 작은 도전을 놓아버리지 않고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성취를 통해 내면을 성장시키는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땐 유한이가 아침을 먹고 아침잠도 자고 점심을 먹고 낮잠도 자던 때다. 아침잠을 자기 시작하면 니스 해변 사진이 끝없이 펼쳐진 페이지에 시선을 고정하고 프랑스어 문장들을 집어삼키곤 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줄 알았던 프랑스라는 나라. 그 언어가 참 그리웠다. 2012년, 여름으로 가는 6월에 떠오른 건 하늘이 잔뜩 흐린 날의 니스 해변이었다. 대학 동기 두 명과 거닐던 곳. 호텔 주변에 딱히 주전부리를 살 곳이 없던 곳. 그곳에서 우리는 기름기가 쫙 빠진, 너무 빠진, 말라빠진 통닭 한 마리와 마녀가 만들어낸 것처럼 새빨갛게 번쩍이는 사과를 샀다. 그날은 동기 중 S 언니의 생일이었는데 우리 식대로 사과에 나무젓가락을 초 대신에 꽂아 놓고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하하하.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S 언니 생일을 축하합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사과 진짜 맛있어. 마녀가 독을 탔대도 먹어 치우자. 치킨도 빨리 뜯어봐.”

“나는 이런 자유로움이 너무 좋아. 우리 셋이 대학 때 생각나? 이 언니 맨 뒤에서 찢어진 청바지 입고 세상 불만 다 짊어지고 있었잖아. 학기 초반엔 학교도 자주 안 나왔는데 우린 그런 언니가 너무 멋있어 보였고. 서로 먼저 가서 말 걸어보라고 했었잖아. 하하하하”

“너 프랑스에서 공부 안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었겠냐? 네 덕에 가이드 데리고 프랑스 여행도 한다.”

“난 당신들 덕에 이렇게 니스 여행도 할 수 있고 내가 고맙지.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만 있다 갈 뻔했잖아.”


셋이 좁은 침대에 걸터앉아 사과를 나눠 먹고 말라빠진 치킨을 나누던 그때가 세상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인생이란 일상의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 마치 꿈인 듯 재편집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공부하자고 선택한 순간에 따뜻하고 좋은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난다. 내가 어떤 기적을 바라고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순간에도 삶을 놓고 싶지 않다.


신랑과 유한이가 꼭 같은 네이비색 말 무늬가 그려진 노란 폴로 티를 입고 시험장에 가는 나와 동행했던 날. 엄마 시험 잘 보라고 한없이 맑게 웃어주던 아이 덕분에, 내가 시험장에서 집중하고 있을 그 시간에 아이와 놀아주느라 주말을 보낸 신랑 덕분에 만점을 받은 날을 기억한다. 아이와 신랑이 잠든 틈을 타 밤새워 공부하고 갔던 날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동기들과 좋은 기억 덕분이었을까? 노란색의 두 남자가 희망처럼 내 눈앞에서 나비가 되어 팔랑거린 덕이었을까? 그날은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던 날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건 만점은 그날뿐! 하하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해 열심히 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일을 해내기가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세상 사는 일도 어쩌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수많은 핑계와 부족한 시간이 길을 가로막곤 하지 않나. 터널처럼 긴 인생의 구간을 수없이 반복해 견디며 살아야 한다. 언제나 내게 중요한 일은 내 존재를 다른 사람과 구분 짓는 소수성이었다. 다르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유별나면 어때? 태어남이 다 같지 않을 텐데 같아지라고 배우고 자란 시간을 깨면서 사는 일이 참 쉽지 않았다. 지금도 내겐 무수히 많은 터널의 구간이 남아 있으리라.


잘 살아 낼 거다. 어떤 순간의 내 모습도 꽉 안아줄 거다. 간절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살아갈 거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거다. 9년 전 불타오르던 학구열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없을 때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고 했다지? 여전히 배움의 욕구가 가득한 나는 아직 젊지 않은가.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이건 법륜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알려주신 얘기라 이 가을에 되새기면 참 좋은 말이다. 그러니 부디, 봄꽃보다 아름답게 물들어 가자.


(Caspar David Friedrich, 1774년 9월 5일 ~ 1840년 5월 7일)
우리나라에선 뒷모습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의 대표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입니다.

그의 풍경화는 자연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담은 풍경화 에요. 7살, 엄마의 죽음, 그 이후 동생의 죽음을 직접 목격함으로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어딘가 모를 스산함과 사람들의 모습은 변함없이 뒷모습만 보이고 있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 정상에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뒷모습 그림을 기억하세요?(아래에 따로 첨부했어요)

저는 커다란 창문을 좋아해요.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꿈꾸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박차고 어디론가 나갈 수 있는 어떤 탈출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공기와 물, 바위, 나무 등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그런 대상들 속에 있는 영혼과 감정을 재현해내는 것이 나의 목표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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