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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Dec 26. 2021

일하는 결혼생활

마르크 샤갈/ 도시 위에서

마르크 샤갈/ 도시 위에서

“아버님, 이 사람은 밤 12시에 혼자 맥주 마시고 영화 보다가 자요.”

“퇴근하고 피곤할 텐데 왜 잠은 안 자고 혼자 술 마셔. 몸 망가지면 어쩌려고?”

“이거라도 있어야지. 내 생각할 시간이라곤 하나도 없잖아. 이게 내가 쉬는 겁니다.”


연애 3년, 신랑의 입사와 동시에 상견례를 마치고 생애 최초 효도란 생각에 5월 8일에 결혼을 했던 나. 사회 초년생인 신랑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웹디자이너 경력이 탄탄하게 차오르던 나는 웹상에서의 화면을 만들던 것에서 휴대폰 화면으로의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걸 습득하느라 양재역에서 퇴근 후, 구로디지털단지까지 가서 새로운 기술을 몇 시간씩 눈을 비벼 가며 연마하고 수원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 하아~ 다음 날 새벽 출근을 위해 신랑은 이미 단잠을 자고 있고, 하루의 에너지를 알차게 쏟아내고 컴컴한 집안에 들어온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씻고 나와 건넛방에 있는 티브이를 틀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는 보람도 없다면 버틸 재간이 없지 않나. 그래도 다행인 건 무언가 습득하는 걸 참 좋아하는 내 성격이 다람쥐 쳇바퀴 돌던 그 시간엔 별 불만이 없었다. 결혼을 하나 안 하나 혼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없이 잘 수 없던 밤들. 그런 내가 신랑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유학 전,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참 좋아했다. 퇴근하면 직장 동료들과 또는 친구들과 매일 만나 많이 마시는 술은 아니지만, 수다 떨 만큼 취해 집에 들어오곤 했다. (술자리 환경이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혼자 살아본 세상에서 나 혼자만의 재미난 것들을 찾아낸 후로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보단 혼자 마시는 술이 더 좋아졌다.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고 혼자 보고 싶은 영화를 실컷 보거나 책을 읽으면 그게 제일 행복했다. 주말에 찾아간 친정에서 신랑이 걱정스레 한 말을 들었던 아빠는 어떻게 결혼한 여자가 혼자 술을 마시냐며 평일엔 회사 다니느라 바쁜데 잠을 더 챙겨 자라며 핀잔을 주셨다.


연애 3년 후 결혼에도 환상을 품었을까? 결혼하면 매일 붙어서 꽁냥꽁냥 얼싸안고 살 줄만 알았다. 서른넷이면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가 참 숨이 찼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 먹고 한 시간 반을 걸려 양재역에서 내리면 회사까지 10분 거리. 기획업무에 디자인 작업, 코딩 작업에 때때로 여기저기 지방 출장까지. 기가 막히게 멀티플레이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일찍 노화가 시작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칼퇴근을 할 수 있었던 건 구디단(구로디지털단지)으로 수업하러 간다는 구실로 가능했다. 웹 관련 회사들은 이미 강남 쪽에서 구디단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 퇴근하고 앉은 구디단의 작은 교실에 열 명이나 됐을까? 이미 뇌는 포화 직전인데 다들 또 뇌를 채우러 온 시간. 눈 밑의 다크서클은 나뿐 아니었다. 내리 서너 시간 수업을 들으면 예제를 실행해 보고 수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그와 같은 예제를 써먹지 않고서는 다음날 기억날 리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석 없이 참 열심히도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정확히 몇 주 과정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총 몇 주 과정이 끝난 후 당당하게 수료증을 회사로부터 전달받았다. 그렇게 나는 더 늙어갔다.


그 바쁨의 보상이란 게 돈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밤늦게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캔. 내게 보상은 그랬다.

사람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결혼은 왜 한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대부분을 다른 곳에서 보내고 집에 와서 피곤함에 곯아떨어지려고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늦은 밤과 새벽엔 별 좋은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정신이 지쳐갔다. 사회 초년생인 신랑도 예민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때로 기억된다. 그래도 주말 아침이면 새 신부처럼 각종 채소를 잘게 썰어 넣은 계란말이와 된장국, 시금치, 샐러드 같은 신혼 향기 폴폴 나는 음식을 해 먹었다. 함께 앉아 영화를 보기도 했고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주말엔 서로 얼굴이라도 마주 보고 앉아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 여행을 기다리는 즐거움. 신혼여행으로는 화산이 폭발해서 세계가 난리 통이던 때에 스페인의 남쪽 말라가를 다녀왔다. 그리고 삼 개월쯤 지났을까? 우리는 제주도에 갔다.

나는 주기적 콧바람이 필요한 사람이다. 한 달에 얼마의 돈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사람이 아니다. 숨이 막힐 때까지 달리다가 숨통 한번 터주는 여행만 있으면 그 맛에 살아간다.


일하는 결혼 생활이 바빴기에 어쩌면 그 시간을 잘 지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아이가 생기고 매일 같이 일하지 않아도 바쁜 건 여전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 바쁨을 멈춰야 할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그저 흐르고 흐르는 대로 최대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 가슴에 작은 꿈 하나 정도는 남겨두고 살아갔다. 그래도 언젠가는 꿈을 펼칠 수 있겠지 하면서.


뜻하지 않은 날, 뜻하지 않은 일로 쉼을 얻게 되면서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언제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나에게 참 감사하다. 하루를 꼭꼭 눌러 아껴 쓰고 알차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간절히 원하던 시간이 드디어 주어졌다는 사실. 작은 꿈 하나 펼쳐볼 시간이 생기면서 적어가는 소중한 시간을 나는 내 것으로 만들어간다. 힘들었던 기억도 지나고 보면 괜찮은 추억으로 남는다. 기억이 왜곡된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년 7월 7일 ~ 1985년 3월 28일
샤갈은 아내를 참 사랑했던 작가예요. 

'도시 위에서'라는 작품은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를 배경으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제작되었습니다. 신혼의 단꿈을 꾸는 커플처럼 꼭 끌어안고 하늘 위를 날고 있죠. 따뜻한 초록색을 입은 샤갈의 마음을 알 것 같네요. 가난한 유대인으로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인생의 많은 굴곡을 가지고 살았던 작가인데요. 현실의 어두움을 사랑이라는 주제를 찾아 그림으로 승화시키며 산 작가죠. 좋은 도피처를 찾은 게 아닐까 싶어요.

마음속 따뜻하고자 한 그 마음 때문인지 그림은 온통 향기롭고 따뜻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싶어요. 꿈을 꾸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힘을 가진 그의 그림을 보며 신혼 때의 일을 떠올려 봅니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위의 글은 샤갈이 그의 첫 아내, 벨라와의 첫 만남 후 적은 글이라고 해요. 오래도록 건강했으면 그녀와의 시간이 더 많이 그림에 남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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