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살기를, 이제는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Victor Gabriel Gilbert

by 김상래
Victor_Gabriel_Gilbert_The_Flower_Seller.jpg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Victor Gabriel Gilbert/ 꽃을 파는 여인 The Flower Seller 1885

“혜정아, 우리 5시 반까지 갈게. 음식 차리지 말고 뭐 시켜 먹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그래. 뭐 시켜 먹을까? 너희 신랑 피자, 치킨 좋아하니 그거 시킬까? 아니면 치킨, 탕수육?”

“치킨하고 탕수육 먹자. 금방 갈게.”


나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딸과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을 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남편 둘은 같은 직장 선후배로 유한이 돌잔치를 하면서 인연은 우연하게 다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는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쁜 아이였다. 결혼을 하고 예쁜 딸 둘을 출산하고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며 언제나 주변을 더 챙기느라 자기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산 세월 앞에 신은 무참하게 암 선고를 내렸다.


몇 년 전 친구는 위암 선고를 받고 위의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통통하던 친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시든 꽃처럼 비쩍 말라버린 친구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생각나 한참이나 가슴이 아팠다. 모질지 못하고 거절하지 못해 많은 역할을 해내느라 온몸이 부서져 버린 친구의 병실을 나오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음식을 먹고도 소화 시키기가 힘들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지도 못하게 됐다. 그런 친구가 다시 건강을 되찾고자 여러 가지 운동을 시작하며 활기를 찾고 몸도 좋아지더니 이제는 비쩍 말라 보기 안쓰러운 사람에서 군살 하나 없는 근육 짱 날씬쟁이 여자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친구의 큰 딸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서 축하할 요량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작은 엽서에 짧은 글을 하나 적어 전달하려고 친구네를 찾았다.


남편들의 회사 얘기에 우리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삶을 듣고 있었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그들의 얘기 어느 곳에 우리가 끼어들 수 없어 회사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넋두리를 듣고 있자니 친구가 자리를 옮겨 무언가를 꺼내 자르고 맵시를 내 여러 겹의 포장지 안에 예쁜 카네이션을 장식해 포장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주로 집에서 만들기도 어려운 빵과 쿠키를 만들거나 맛간장이나 과일청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고급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한다. 아이 둘을 키우며 제빵사 자격증과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나와는 또 다른 재주를 원하는 공부에 쏟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최고급 솜씨와 후한 인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인정받는 터라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입소문도 나 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딸아이 둘을 알뜰살뜰하게 키우는데 쓰며 살았다. 그런 친구가 꽃다발을 만들길래 주문 들어온 게 있는가 보다.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데 우리가 방해가 된 건 아닌가 싶던 찰나,


“이거 너 가져가. 선물이야.”

“뭐야. 오늘 네 딸 축하해 주러 온 건 우린데 왜 나한테 꽃다발을 선물해. 나 축하할 일도 없는데?”

“그냥 주는 선물이야. 우리 딸 축하해 주러 온 것도 고맙고 딸 선물 준비해 준 것도 고마워.”

“내가 꽃 받아본 게 얼마 만이냐. 역시 꽃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 넌 재주가 왜 이리 많은 거야. 나도 이런 게 배워보고 싶은데 너한테 배워야겠다. 사람 모아 올게. 강습해 줘. 하하”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친구에게 꽃다발을 받고 그녀의 딸 보다 오히려 내가 축하받는 기분이 들었다. 또 어디선가 집안에서 쓸 소소한 것들을 한 보따리 챙겨 주며 집에 가져가서 쓰라고 건네주는 걸 받았다. 그 안엔 김이며 수건, 라텍스 장갑 등 소소한 것들이 풍성하게 들어 있었다.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마음을 받고 돌아오니 나도 친구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졌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받은 꽃의 마음에 답례로 친구를 위해 글 하나를 남겨보기로 했다. 절제된 위의 절반만큼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다면 선물이 될까? 내 하루엔 나의 일만 있지 않다. 내 주변에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녀도 나를 이룸에 있어 소중한 한 부분이란 생각에 내가 그녀를 남겨주면 어떨까? 내 책 한 꼭지 정도에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마음 한 부분이라도 보듬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선물이 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선물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녀를 기록으로 남겨주는 것.


언제나 내어주기만 하고 참기만 해 아팠던 친구가 무척이나 건강해진 모습을 보는 게 마치 내 몸의 아픔이 모두 가신 것만큼 기뻤고 친구의 큰 딸을 축하해 주러 간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해 꽃다발을 만들고 있던 모습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음을 쓰며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니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사람보다는 지금처럼 자신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스스로를 마음껏 가꾸어 가며 남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한이가 돌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녀의 큰 딸이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만 간다. 아이들은 크고 우리는 더 빠르게 늙어갈 거다. 이제는 지금의 나에게 친절해져 더 많이 안아주어야 한다는 걸 친구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자신으로 서기 위해 노력하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더욱 힘껏 응원해 본다.


“혜정아, 남은 인생은 더 이상 아프지 말자.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너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어주고 살아.

네게 받은 꽃처럼 그렇게 우리 더 많이 오래도록 피어 있자.”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Victor Gabriel Gilbert

(French, 1847–1933)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는 파리 출신 화가입니다. 어렸을 때 재능이 남달랐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 그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미술수업을 들으며 화가의 길을 다져갑니다. 그 길을 간절히 원하던 그에게 프랑스 화단의 호평이 쏟아져요.

질베르의 그림은 섬세하고 굉장히 사실적인 작품으로 주로 파리지앵의 일상, 특히 파리의 시장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소소한 풍경이 주는 따뜻하고 행복하고 조용한 느낌이 오늘 제 친구를 떠올리게 만드네요.

늘 내어주기만 하느라 고개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선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이 한 편의 글이 제 친구에게 작은 선물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림을 가져와 봅니다.

이제는 꽃다발 만들어 나누어 주기만 하지 말고 거울 속의 자신도 챙기면서 자신의 뒤로 쌓인 예쁜 꽃다발을 본인에게 선물하며 살기를...

꽃 속에서 아름답게 함께 하기를 바라봅니다.

A_woman_before_a_mirror.jpg A woman before a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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