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르디의 고기 잡는 소녀 Fisher Girl of Picardy
아빠 선물이에요!
아침에도 잘 못 보고 저녁에도 잘 못 보고
보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빤 나의 소중한 아빠예요!
엊저녁에 수원시민협의체 ’나우어스‘ 시민리더 해단식이 끝나며 가지고 들어온 수원문화재단의 선물꾸러미에 예쁜 비누가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두 분 선생님과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하느라 무얼 챙겨 온 것인지도 모른 채 있었다. 집에는 저녁 식사 시간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뭐라도 꺼내 먹었을 텐데 어금니 네 개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통에 음식 섭취가 불편해진 아이는 미리 사다 잘라 놓은 꽈배기 두 개로 배울 채우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느라 근 한 달을 내 글과 씨름을 하다가 숨통이 트이니 아이부터 보였다. 시간이 나면서, 미술놀이를 함께 하고 케이크도 만들고 원카드도 하면서 늘 옆에 있지만 바빠서 신경 써주지 못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가 바쁘지 않으면 좋겠단다. 예전처럼 함께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아이를 설득한다. 엄마도 꿈이 있다고. 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너와 함께 성장하고 싶으니 이따금 찾아오는 바쁜 시간을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쉽게 수긍하고 “대신 오늘은 꼭 케이크 만드는 거 준비해둬야 해. 나 학교 갔다 오면 빵 위에 생크림, 또 빵 위에 생크림 3단으로 만들 거야. 생크림이랑 초코 크림도 필요하니까 엄마가 준비해 둬야 해. 이따가 꼭 같이 만들자. 알았지?” 그러곤 학교 담장 너머로 손을 흔들고 친구들과 들어갔다.
내게 여러 명의 아이가 허락되진 않았지만 한 아이에게 충분히 감동받고 위안을 얻고 살아갈 힘을 가진다. 힘들게 출산한 아이와 끈끈하게 이어온 시간 속엔 늘 바쁜 신랑의 빈자리가 있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엔 아빠의 빈자리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 몸이 고단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을 땐 신랑이 참 밉단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것이 나도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고 많은 걸 잃으며 얻은 쉼 속에서 글을 쓰며 이해하게 되었다. 밥벌이의 고단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가족의 무게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으로 10년이 넘게 한 회사에서 몸 바쳐 일하고 있는 가장의 역할을 잘 안다. 그래서 아이에겐 우리 가족의 역할에 대해 자주 얘기를 한다.
아이가 4학년이 되고 보니 아빠의 빈자리에 대한 이야기에 충분히 수긍을 한다. 어떻게든 바쁜 일이 마무리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걸 아이도 아는 걸까? 1박 2일 여행을 가도 회사 업무로 통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이가 이제는 조금 알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선물꾸러미의 포장지를 벗겨 보곤 향긋한 비누라며 씻는 걸 좋아하는 아빠 방의 화장실에 가져다 두고 엎드려 무언갈 적고 있었다.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며.
아이 다섯 살, 그때도 신랑은 빈자리일 때가 많았다. 싱가포르에 출장 가 있었고 신랑을 만나기 위해 회사에서 휴가를 얻어 아이와 둘이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연신 아빠에게 줄 편지라며 삐뚤빼뚤한 손 편지에 “아빠 사랑해요”를 적어두곤 공항을 빠져나와 아빠를 보는 순간 한 여름의 무더운 바람에 선풍기 같은 편지를 휘날리며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아빠의 빈 자리가 생길 때마다 예쁜 손 그림을 그리고 손 편지를 써서 건네던 일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아기 때의 글인지 그림인지 모를 낙서를 받아 들고 받았던 감동을 넘어 눈물이 글썽이게 만드는 편지를 받아 든 신랑은 입이 귀에 걸려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실어 갔다.
한 집에 살아도 서로 얼굴 보기 힘든 게 보통의 부부다.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그렇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길은 많을 텐데 더 많은 시간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가는 우리가 가엽기도 하다. 여전히 글 쓰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고 있는 아이의 아이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16cm(포스트잇 가로 4cm, 세로 4cm) 안에 있는 글을 보고 왜 좋아하는 줄 알아?”
“왜?”
“그 좁은 종이 안에 커다란 내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야.”
엄마가 꿈만을 좇아 사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몰라도 괜찮다. 내 꿈이 실현돼 안정적이 되면 신랑을 회사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은 생각이다. 글을 쓰고 책 읽는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건 신랑이 먼저였고,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꿈이라는 걸 가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 길을 열어 보려 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기에 늘 멀리 돌아갈 테고 주변의 도움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간절히 원하는 때마다 좋은 분들이 나타나 멈추려던 길에 한 걸음 디딜 수 있는 힘을 실어 준다. 난 지조와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받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
소중한 아빠인 사람을, 꿈을 나누고 싶은 신랑인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참 예쁘게 자라는 아이 덕분에 오늘도 글을 쓴다.
엘리자베스 너스 (Elizabeth Nourse / 1859~1938)
미국 여성 전업 화가
제 지난 글에 엘리자베스 너스에 관한 글을 짧게 올린 적이 있었어요. 이 그림에서 제 마음이 읽혀서 가져와 봅니다. 언덕 위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어린 남동생과 서 있는 소녀의 고단한 모습. 저는 이 소녀의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함께 있자고 약속한 시간들이 참 모자라네요.
아들과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제 마음이 보여서요. 그래도 누군가 대신해 밥벌이를 해주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물론 저도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해보고 싶은 생각입니다만,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지는 않아도 되니 감사한 일이죠. 아들 손을 붙잡고 고기잡이를 가진 않아도 되니까요.
그럼에도 이 그림은 제 마음을 많이 담고 있네요. 뭐 다른 부부들도 다르지 않겠죠.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긴 젊은 날의 보상은 누가 해주나요. 시간을 단축해 보고자 글을 씁니다. 길고 먼 길일 텐데 함께 가려고 그 길로 갑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바람과 맞짱 떠 이기고 싶네요. 아들 손 절대 놓지 않고 꼭 붙잡고 같이 가렵니다. 보이지 않는 저 먼 길 어딘가에선 가족이 모두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