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르손 자화상, 1895
이상한 일이다. 나는 꼭 친정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혼자서 한 근 이상을 먹어치운다. 그런 나를 보곤 가족들이 모두 대단하다며 고기를 참고 사냐고 할 정도다. 이상한 일은 남편과 아이, 그리고 내가 고깃집에서 외식을 하면 그렇게 먹게 돼질 않는다. 그저 세 사람이면 많이 먹어봐야 3분이면 배가 찬다. 아빠가 구워주는 삼겹살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게 되는 그 이유가 뭘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빠와의 추억 같은 게 그 삼겹살에 얹어진 것은 아닐까?
초등시절, 아빠가 다니던 회사는 정남에 있는 농약 연구소였다. 아빠가 숙직이 있는 날 우리 가족은 아빠 회사에 가서 아빠와 함께 근처 저수지에서 낚시도 하고 동네 분들과 수박을 따거나 비닐하우스에 있는 식물들을 보곤 했다. 곳곳에 피어 있는 식물들, 나무, 꽃의 이름을 아빠에게 물으면 마치 네이버 지식백과처럼 척척 나오는 게 참 신기했다. 우린 그 시절에 연구실에 있는 비커나 메스실린더, 현미경으로 밖에서 잡은 개미를 연구실로 가지고 와 놀기도 했다. 아빠가 숙직이던 날 저녁엔 꼭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얇은 돌판 아래에 불을 피우고 돌판 곁에 빙 둘러앉아 구워 먹는 삼겹살이 정말 맛있었다. 도심에서 컸지만 시골 감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아마도 그런 시절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아빠를 따라다니면 늘 푸른 밭이었고 나무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 보통리 저수지엔 연꽃이 한가득 피어 저수지를 온통 덮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과 친분이 있던 아빠 덕에 친구들이라도 데리고 가는 날이면 저수지에서 함께 배를 탈 수도 있었다. 그런 날엔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아빠는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입이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늘 맛있는 재료를 구해 오셔서 가족들과 나누고 주변에 친한 지인들, 친척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빠는 펼치길 좋아하는 타입이고 엄마는 늘 아빠의 판을 수습하느라 시간을 보내셨다. 나는 그런 아빠의 성향과 엄마의 성향을 고루 닮았다. 엄마는 나를 보고 아빠를 더 많이 닮았다 하고 아빠는 나에게 엄마를 더 닮았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 아빠를 반반씩 닮은 셈이 된다. 참 공평하게 닮은 나는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편에서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가부장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아빠로 인해 집안에 사람이 끊일 날이 없었지만 그 덕에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특별히 낯선 감정을 갖지 않는다. 대신 금세 친해져도 내겐 어느 정도의 선이 있다. 그것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할 에너지 너머의 선을 말한다. 내가 쏟지 못할 어떤 감정 앞에서의 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빠도 엄마도 참 공평하게 닮은 딸이 아닌가 싶다.
근거리에 살고 있어 자주 보면서도 얼굴 본 지 오래되었다고 고기 먹고 싶으면 전화하라고, 아빠가 맛있는 삼겹살을 사놓을 테니 언제든 오라는 전화에 나는 바쁜 척을 자주 한다. 오늘은 이런 일로 바쁘고 이번 주는 또 다른 일로, 그러면서 내 마음으로는 참 자주 간다 싶은데 늘 안 온다 하시는 아빠의 전화 목소리엔 어린 날 딸의 그리움이 서려있는 것은 아닐까. 손주들이 하나둘 생기고는 손주들을 데리고 감자도 캐고 매실나무에 열린 매실도 따게 해주고 싶은데 다들 바쁘다고만 하는 그 핑계들에 아쉬움이 쌓인다. 글을 쓰는 일, 그것은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들어가게 한다. 당연하듯 시작하는 하루 속에 얼마나 많은 감사의 일들이 존재하는지 쓰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일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도무지 그 작은 시간들, 지나가버리면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을 시간들을 알 길이 없어진다.
힘든 일이 있거나 일을 하나 해냈다 싶은 날엔 꼭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아빠는 얼른 오라며 양손은 가볍게 그저 아이 데리고 와서 먹고 가라 신다. 생각지도 못하게 도슨트를 두 타임이나 하면서 두어 시간을 내내 목을 쓰느라 내심 기특하고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얼마 전에 남편이 회사에서 기획안 발표를 하고 1등을 한 사실을 알고 있던 아빠가 겸사겸사 축하 파티를 하자셨다. 그렇게 친정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던 중,
“엄마, 나 할아버지네 먼저 가 있을게. 아빠랑 엄마랑 준비하고 와.”
“왜? 엄마, 아빠 금방 준비할게. 같이 가. 왜 먼저 가려고?”
“지난번에 할아버지랑 옥상에 고기 구워 먹으려고 준비했었는데 엄마, 아빠 바빠서 못 했잖아. 내가 먼저 가서 할아버지랑 준비해 둘 테니까 엄마는 아빠랑 이따가 와. 알겠지?”
“엄마 준비 거의 다 했어. 같이 가.”
“아니야, 나 가서 준비할 게 있어.”
“그럼 가는 길에 신호등 없는데 거기 조심해서 건너야 해. 알겠지? 금방 따라갈게”
“응. 사람들 건널 때 같이 건너갈게.”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텃밭에 가거나 산에 가는 일을 좋아한다. 우리 집 분위기와는 다르게 에너지 있게 함께해 주는 할아버지와 낚시를 가는 일도 참 재미있어한다. 그렇게 아이는 먼저 가서 할아버지와 준비를 하겠다고 집을 나섰고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손깍지를 끼고 집 앞 장다리천을 건너가며 그간 발표 준비하느라 근 4개월가량을 온통 회사일에만 신경 쓰던 것들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봄날로 가는 2월의 마지막 주, 친정으로 가는 길엔 따사로운 햇살과 아직 매운바람이 불었다. 어느덧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르던 동네 슈퍼에 도착했다. 맥주와 아이의 주전부리, 큼지막한 딸기 한 소쿠리를 사들고 친정집 문을 열었다. 바람이 거세지는 한낮의 친정집 옥상에선 숯불 냄새가 났다. 깨끗하게 씻은 딸기와 갖은 야채들을 커다란 그릇에 담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옮겨 놓고 그동안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했다며 술잔을 기울였다.
세 자매 중 큰 딸인 나는 금전적으로 가장 부족하다. 우리의 살아감에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이 돈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하고 싶은 것들이 그것과 잘 맞물리지 않아 그런 것인지 세 자매를 같은 선에 놓고 보면 우리 부부는 항상 저 끝에 서게 된다. 늘 빈손으로 오라는 부모님의 마음 한편엔 내가 짠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자만심으로 가득 차 감사함을 모르던 시절이 내게도 오랫동안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런 모자랐던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 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알게 해 준다.
마음이 힘들 때, 내가 수고했다고 느낄 때, 칭찬받고 싶을 때,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찾아가 한껏 풀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안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 물질 너머에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간다. 아빠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한 근도 넘게 먹어치우는 일. 내게 아빠의 삼겹살은 마치 부모님의 사랑과도 같은 게 아닐까. 받을수록 좋은,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 사랑의 맛이 아닐까.
칼 라르손
스웨덴의 국민화가
제 다른 그림 에세이에 이미 칼 라르손 화가에 대한 언급이 있어 길게 적진 않습니다. 다른 어떤 그림보다 칼 라르손 그림을 많이 봤었나 봐요.^^
아버지로 인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새로운 가족의 역사를 만든 좋은 아버지의 표본을 보여준 칼 라르손.
함께 미술을 했던 아내 카린 베르게와 결혼해 8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칼 라르손 작품의 행복한 모델이 되었죠. 브리타라는 딸의 어린 시절 함께 그려진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요. 얼마나 사랑하는지 딸에 대한 애정이 작품에 넘쳐흐릅니다.
마흔여섯, 이제야 그런 느낌을 알아갑니다. 글을 쓰는 일은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아빠가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었는지, 또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나 하는 것을요.
아빠에게 전화해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하는 날은 아빠의 사랑이 그리운 날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