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르손
아침을 여는 곡으로 블로그 이웃님 곡을 듣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술 드시고 늦게 귀가하는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이층으로 가까워져 올 때면 동생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전원 집합! 우리 똥강아지들 안 자는 거 다 알아. 집합!”
셋이서 한 방에 누워 문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숨죽이던 시간.
“다들 안 자는 거 다 아는데. 아빠가 선물 사 왔는데. 나와봐.”
한숨을 깊게 내쉬고 서로들 어찌할지 몰라 눈치를 보는데 빼꼼히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잠깐 나와봐. 아빠가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셨다. 맏이인 나는 동생들을 흔들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자 다들 앉아봐. 아빠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우리 똥강아지들 주려고 통닭 사 왔지. 우리 이거 먹고 자자. 자, 다들 앉아서 손잡고.”
올 게 왔구나. 아빠가 술 드시고 들어오는 늦은 밤을 우리는 싫어했다.
“아빠하고 나아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나는 우리 딸들이랑 이렇게 손잡고 노래 부를 때가 참 좋더라. 우리 딸들 최고”
무지막지하게 까슬 거리는 뽀뽀 세례가 쏟아졌다. 그 밤에 노래를 한바탕 하고 삥 둘러앉아 통닭을 먹는 맛이란. 하하하하하.
기억의 창고에서 스물 거리며 빠져나오는 오랜 흔적들이 피아노곡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웃님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이제는 아빠의 마음을 너무도 알 것 같아서. 그 어린 시절의 귀찮던 밤들이 왜 이제 와 이해가 되는지.
새벽에 출근했다 종일 면접 보느라, 할 일이 산더미인 신랑의 늦은 귀가 시간. 왕복 4시간을 출퇴근에 쏟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가족이란 책임이 어깨에 한 짐일 텐데 쉬고 싶어도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잘 안다. 30년을 한 회사에 다니면서 우여곡절도 참 많았던 우리 아빠도 그랬을 테지. 수원에서 구미로 쫓겨가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건, 그 밥줄에 자식들이 주렁주렁 붙어 있어서였겠지.
딸 셋이 바르고 예쁘게 커가는 모습 보면서 고된 밥벌이의 생활을 정년까지 할 수 있었을 테지. 일이 끝나고 동료들과 한잔하다 보면 가족 생각이 나셨을 테고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동네에 있는 가마솥 통닭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사셨을 거다. 예쁜 자신의 딸내미들이 생각나서 얼른 얼굴을 보고 싶어 발길을 재촉하셨을 거다. 2층으로 올라오는 걸음에 딸들하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가질 희망을 담아 오셨을 거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마주 잡은 가족들의 온기라도 느껴야 하루 시름이 풀리는 것 같으셨을 거다.
가장이라는 외로움. 밥벌이의 설움. 그 모든 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될 나이가 된 걸까? 그토록 지겹던 그 밤의 ‘꽃밭에서’가 이렇게나 슬픈 노래였던가. 동생들 만나서 수다를 풀 때면 그때 얘기를 떠올리며 낄낄거리고 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빠 생각에 울고 있으니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한 번은 신랑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아니, 아빠는 우리 어릴 땐 새벽에 회사 가서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그렇게 열심히 읽던 사람이 왜 맨날 우리가 집에 가면 게임만 하고 드라마만 보고 있는 거야. 이것저것 그때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 배우러 다니면 얼마나 좋아. 우리 아빠가 변했어. 너무 많이.”
“당신은 참 잔인한 면이 있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30년을 한 회사에 다니다 퇴직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이제는 본인이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시는 게 맞는 거지. 너무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자식들 다 컸으니까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시면 좋잖아. 맨날 엄마가 같이 안 놀아 준다고 하지 말고.”
“새벽마다 텃밭 가시고 낚시 다니시고 등산 다니시고 두 분이 잘 사시는 거야. 그렇게 사는 거 어려워.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두 분이 여행 다니면서 잘 사시는데 왜 그래.”
“알지. 다 좋은데 나 어릴 땐 매일 일기 써라. 책 많이 읽어야 한다. 늘 그랬거든. 본인도 그렇게 했고. 그런데 이제는 안 하시니까. 답답할 때가 있다는 거야.”
“이제는 편하게 사시게 둬. 그분들 인생이 있는 거잖아.”
“.......”
돌이켜보면 아빠는 최선을 다해 회사에 몸을 바치셨다. 아빠가 없는 틈을 타, 내게 아빠의 불만을 내놓는 엄마도, 엄마가 없을 때, 엄마의 불만을 내놓는 아빠도 모두 최선의 삶을 사셨다. 더 이상의 최선이 없을 정도로. 알면서도 나는 가끔 신랑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걸 들어주느라 속이 편치 않을 신랑의 마음도 좀 헤아려 봐야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신랑과 그 옛날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열심히 글을 써서 노후 준비를 앞당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그때문일 런지도 모르겠다.
칼 라르손 Carl Larsson
1853년 5월 28일 ~ 1919년 1월 22일
스웨덴의 국민 화가.
이케아의 모든 디자인은 그의 아내 카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죠.
그들의 집, 릴라 히트나스
(작은 용광로라는 뜻).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
이곳에서 그들은 여덟의 아이를 낳고 살아남은 다섯의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합니다. 방탕한 삶을 살았던 그의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갑니다.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 식탁에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행복이란 게 별건가요.
바쁘게 지내는 시간 속에서 가족이 빙 둘러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고 저희 아빠처럼 노래도 부르고 하면 그게 행복인 거죠.
가족들의 식사 모습을 그리느라 왼쪽 의자에 자리가 비워져 있습니다. 가장이란 늘 이렇듯 가족을 책임지느라 자리를 비우게 되죠. 우리를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이 살아온 아빠의 세월을 제가 담아낼 날이 머지않아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