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엄마 책 쓸 때 넣으면 어때?

조지 던롭 레슬리 (George Dunlop Leslie)

by 김상래
2766E93B54CEE61D20.jpg 조지 던롭 레슬리 (George Dunlop Lesli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글 쓰는 엄마 옆엔 책 읽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릴 때의 독서습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글밥을 늘리느라 찾던 책 중 '제로니모의 모험‘이 있었다. 그 책을 기점으로 글밥이 훅~ 늘었고 양장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는 평소에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뒤적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선별해 아이에게 추천하곤 했다. 그렇게 추천했던 책들이 '고양이 전사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테메레르', '캐리비안의 해적‘류의 판타지 책이었다. 물론 저학년 수준에 맞는 '스파이독'이나 '전 천당' 같은 책도 있었다. 나와의 교감이 좋은 아이는 추천해주는 책을 마다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고 또 읽으며 대사를 외워 역할 놀이를 하기도 했다.


700페이지짜리 시리즈물 양장본도 덥석덥석 읽길래 글밥을 늘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너무 판타지에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은데 음식 편식하듯 책도 그렇게 될까 마음이 쓰였다. 흥미롭게 읽은 판타지물은 영화로 반복해서 보며 대사를 더 정확하게 외웠고 급기야 영어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보다.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구나.'라고 느낄 무렵 내 생활이 바빠졌다. 그렇게 한동안은 아이가 다른 책엔 손도 대지 않고 읽었던 책만 끊임없이 읽어나갔다.


내게 여유가 찾아오며 아이를 보니 그동안은 엄마가 재미있다며 추천해줬던 책들을 두루두루 붙잡고 있었는데 신경 쓰지 못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흥미 위주의 판타지에만 너무 심취했던 건 아닌가 싶어 집에 있는 새로운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추천했다. 내가 초등 고학년 무렵 재미있게 읽었던 세계명작 중에 15 소년 표류기, 기찻길의 아이들, 솔로몬 왕의 동굴 같은 책들로 말이다. 추리나 모험류의 책을 나도 좋아했었다.


'15 소년 표류기‘를 읽으면서 거만하고 이기고만 싶어 하는 도니판 때문에 답답해 죽겠다고 했고, '기찻길의 아이들‘을 읽고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착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다 읽고 나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다시 찾아와 내가 더 충만했다. 꼬꼬마 시절부터 이런 습관, 이런 대화를 만들기 위해 TV 없는 환경을 꾸려왔다. 책 속엔 수많은 세상이 숨어 있다. 단 한 번 사는 인생으로 끝내기에 너무 아쉽지 않나.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세상을 함께 만나며 그 속에서 대화하고 여유롭고 즐거운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다. 가족이 모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시간, 아이가 책을 덮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이 문장 봐봐. 이거 엄마 책 쓸 때 쓰면 어때? 난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제일 좋은 거 같아. 다 착한 아이들만 나오는 책이야. 행복한 책이다 이 책.”


“어디 봐봐. 유한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친구가 되면 좋겠구나? 알겠어. 엄마가 이 글 따로 적어두고 엄마 글 어딘가에 쓸게.”


아이는 소름 끼치도록 부모를 그대로 답습한다. 글을 쓸 때는 읽었던 책을 뒤적이며 마음에 들어 밑줄 그었던 문장에 표시를 해두곤 책 쓸 때 인용했던 방법을 아이가 어깨너머로 보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아이가 건네주던 문장을 아래에 옮겨 본다.


그럼요 엄마,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걸 잘 보여주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아이는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걸 참 좋아한다.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얻는 타입이랄까? 집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음 씀씀이가 예쁜 아이다. 아이가 주로 연습하는 성대모사는 스네이프 교수 성대모사를 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라든가 암살의 이정재가 재판관 앞에서 어디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그대로 따라 한다. 아! 가장 잘하고 배꼽을 쥐게 하는 성대모사는 그림을 참 쉽게 설명하는 밥 아저씨다. 색상에 대한 디테일까지 어떻게 그렇게 비슷하게 하는지 남편과 그걸 들을 때면 눈물이 날 지경으로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순한 꼬꼬마 시절을 보냈던 아이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분을 전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가 삶을 살아가며 겪을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높고 안정적인 자존감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 일을 우리는 책을 통해 사유하고 여행하는 일로 경험하게 했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해 줄 수 있는 건 책의 힘이 크다. 아이를 키우며 돈을 들여 별다른 방법을 취한 적은 없다. 책 읽기와 쓰기 습관 외엔. 아이가 보여준 문장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발견하는 일이 나는 참 즐겁다.




조지 던롭 레슬리 George Dunlop Leslie

1835-1921

빅토리안 시대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조지 던롭 레슬리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평온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1876년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면서 행복과 낭만, 따뜻함과 풍요로움을 그렸던 화가 조지 던롭 레슬리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그림은 봄날의 벚꽃처럼 따뜻하고 차분하고 생기 있죠.

집안에 추운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작품으로 느껴져요.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책 읽어 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는 어느새 졸음이 쏟아져야 하는데.... 앨리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초롱한 눈망울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엄마의 포근한 손이 아이의 한 손을 데우고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덧 따뜻한 잠에 빠져 들게 하죠.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든 아이를 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엄마, 아이, 책 이렇게 세 박자가 참 따뜻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좋아해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이 겨울 꺼내 보면 난로처럼 따뜻해져 금세 온기가 돕니다.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소박한 순간의 모습이 좋아 보고 또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전 15화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