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면서 한식을 좋아한다는 건, 한인마트를 방앗간처럼 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인즉슨, 한국에서 파는 값의 2배를 주고 아이들이 먹고 싶은 한국 과자, 한국 아이스크림을 사야 한다는 뜻이고 때로는 3배를 넘게 주고 서라도 일 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냉이를 사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 살 때는 내 입맛이 딱히 한식에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외식을 하면 주로 파스타, 피자, 치킨, 초밥, 스테이크. 어쩌다 먹는 돼지갈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는 그냥 토종 한국인 입맛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가 먹고 싶을 때가 그렇고, 맛있게 무친 깍두기에 설렁탕 한 그릇이 땡길 때가 그렇고, 매콤한 청양고추에 잘 익은 김치와 순대국밥이 그리워질 때도 그렇다. 야밤에 걸어 나가 먹던 시장 한켠에 있는 야채곱창집 아주머니의 손 맛이 그리울 때가 그렇고, 비싸서 손 떨리지만 생각만으로도 입에서 침이 줄줄 나는 양곱창을 먹고 싶을 때도 그렇다. 해산물 넘쳐 터지는 조개구이판을 떠올릴 때나, 치즈 가리비를 먹고 싶을 때도 그렇다.
넷플에서 하는 반찬의 나라, 김치의 나라, 국물의 나라, 한우 랩소디, 짜장면 랩소디를 보려면 마음 근육을 미리 키워놔야 한다. 때로는 점심에 짜장면을 먹고 저녁에 짜장면 랩소디를 시청하는 식으로 충격을 중화해 보았다.
그러나 신랑과 둘이서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침을 꼴깍꼴깍 삼켜가며 넷플 에피소드를 봐야 한다는 건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티비를 시청하는지라 야식을 참으며 넷플을 시청하는 고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는, 한국 간식을 집에 들였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아이들 간식이랄 게 전부 칩, 주스, 혹은 달달하거나 이상하게 짠 과자들 뿐인데 게다가 맛의 다양성 마저 초콜릿에 편중돼있는 아이스크림 시장을 피해보고자 하나 둘 야금야금 떡뻥으로 시작한 한국 과자 먹이기. 나의 최대 실수다. 물론 맛난 캐나다 마트 제품들도 있다. 애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근데 종류가 너무 적다는 게 함정!
한국 간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여 우리의 지갑을 탈탈 털어야만 끝난다. 캐나다 로컬 과자보다 비싼 것도 문제고 한국에서 사 먹는 것보다 보통 2배의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한인마트를 자꾸 피하게 된다. 그래도 애들이 "엄마 빼빼로 먹고 싶어요. 사주실 수 없어요?" 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또 방문하게 된 한인마트에서 역대급 세일을 마주했다. 우리 애들이 먹는 과자랑 라면만 세일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인가? 분명 마트에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장바구니 없이 한 손에 먹을 거 한 개씩 들고 나올 줄 알고 쇼핑에 임했것만. 세일 앞에 장사 없다고 우리는 카트가 넘치다 못해 터질 만큼 물건을 사게 되었다.
딸기가 한 팩에 0.99불, 방울토마토가 한 팩에 2.99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먹는 1+1 과자들이 즐비했다. 이건 놓칠 수 없어.
아니 쟁여놔도 썩지 않는 라면이 반값? 이건 무조건 사야 해. 애들이 좋아하는 문어다리도 40% 세일? 두 개 집어야지. 냉동 전복도 세일이네? 그렇게 '어어어어' 하면서 장바구니를 채우고 나니, 마트 계산대가 터져 나가게 물건을 쌓을 만큼 쇼핑을 하게 됐다.
얼마 전 시작한 AI 아르바이트 덕분에 추가 수익이 생긴 터라,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계산대를 노려 보았다. '그래 네가 나와봤자 500불이지... 설마 500불 넘지는 않겠지?' 삑삑 바코드 소리와 함께 올라가는 계산 금액을 보았는데 310불에서 멈춰있었다. 심지어 30불어치 포인트가 있다고 해서 280불에 한가득 장을 보고 나왔다. 별 것도 아닌데 팬트리와 냉장고가 터질 생각을 하니 괜스레 배가 불렀다. "엄마, 팬트리에 먹을 게 없어요" 하는 아들의 푸념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렇게 캐셔 분이 영수증을 건네주셨는데...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애들 몸에 대 보니 족히 1미터는 되는 영수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짜 역대급 영수증이었다.
캐나다 마트 영수증
저녁에 떡볶이 먹을 생각에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온다. 물가가 치솟아 손이 떨려 먹고 싶을 걸 못 살 때도 있지만 이렇게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날도 있다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