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이곳저곳에서 계속 회자되는 가운데 한국 다음으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나라가 있으니, 그곳이 내가 사는 캐나다다. 한국의 출산율이 15.3% 하락하는 동안 캐나다도 무려 9.7%나 하락했다. 이러니 인구 증가율을 유지하기 위해 캐나다가 이민에 더욱 의존할수밖에.
이민을 선택하는 많은 가정들은 아이들을 위해 캐나다로 온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순위 상위권에 늘 캐나다가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오는 양육보조금, 부모가 넣는 교육 적금의 20%를 더 얹어주는 교육 보조금, 뛰놀 수 있는 공원과 가족 친화적인 문화까지. 장점이 많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출산율은 날로 내려가는 중이다.
캐나다의 출산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도시의 집값 상승률이 지나치게가파르다는 점과 더불어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도 맞벌이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민자가 많은 사회라는 건, 육아를 도와줄 대가족이 캐나다에 없을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하다 못해 아이를 잠깐이라도 맡기거나, 픽업을 부탁할 가족이 없다는 건 맞벌이 부부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가 낯선 사람과도 잘 있을 수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베이비시터도 누군가에겐 요원한 일이다. 우리 부부가 13년 동안 단 둘이서 영화를 한편도 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작은 어린 아기를 맡길 데이케어. 즉 어린이집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시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있던 곳에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넣어야 간신히 데이케어에 맡길 수 있을까 말까 했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넣는데도 돈이 들고, 데이케어 비용도 너무 비쌌다*. 누군가에겐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비용이었을지 모르겠지만 10년 전 나에겐 아니었다.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추진하는 하루에 10불 데이케어 정책이 모든 주에 자리 잡으면 이 부분이 해결되겠지만, 데이케어의 수와 퀄리티가 관건이 될 것 같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추가로 내야 하는 몇몇 비용을 제외하고는 데이케어 비용처럼 부담되는 지출은 사라졌다. 문제는 아이가 하루에 3시간 30분만 유치원을 가는 것이었다 (도시마다 시간은 다르다. 전에 살 던 곳은 종일제 유치원이었다). 오전반 혹은 오후반. 금요일은 한 달에 한 번만 유치원에 갔다.
캐나다는 보호자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보호자가 아이를 픽업해야 하교할 수 있다. 게다가 12세 미만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 없다. 제한 연령은 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그렇다. 결국은 아침 데이케어 혹은 애프터스쿨 케어 및 픽업 혹은 드롭을 해 줄 사람을 따로 구해야 맞벌이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아침 8시에 가서 2시 반에 하교하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2시 반에 마치는 회사는 없으니 결국 오후 데이케어, 픽업 서비스를 구해야 맞벌이가 가능하다. 게다가 금요일은 8시에 가서 12시에 학교를 마친다.
우리 매니저가 일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 이번에 회사 그만둘 뻔했어. 오후 데이케어 못 구해서." 온 가족이 여기에 사는 캐내디언인 매니저도 이런 소리를 하니,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이민자 가정들은 오죽할까.
문젠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추가로 학교가 쉰다. 봄 방학, 여름 방학, 가을 방학, 겨울 방학.
아이들을 봄 방학 1주일 동안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 캠프에 보내려면 일주일에 못해도 500불은 든다. 아이가 둘이니까 나는 천불. 일주일에 백만 원을 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제반 비용보다 자신의 연봉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커리어 공백이 용납되지 않는 직업이지 않는 이상, 한 사람이 집에 있거나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물론 부모의 교육관과 가치관도 모든 결정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 부부 두 사람 모두의 연봉이 높아야 맞벌이에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런데 맞벌이를 하는 경우 정부 지원금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한 사람이 집에 있는 게 낫게 되는경우도 허다하다. 맡길만한 곳에 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고.
학교에 들어가면 두 달에 한 번씩 정도 하는 필드트립을 포함 학부모 자원봉사뿐 아니라 자잘하게 참석해야 할 기부금 모금 행사들도 생긴다. 거기에 추가로 운동을 (특히 하키) 시키면, 부모 중 한 명의 전업 택시 드라이버가 된다.
제일 문제는 아이가 아플 때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대책이 없다. 병가를 처리해 주는 회사에 다니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바로 월급에 구멍이 나는 셈이다.
겨울 내내 세 달째 돌아가면서 아픈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첫째 아이가 1주일 학교에 빠지고 나면 둘째 아이가 1주일 학교를 빠지고. 그게 끝날 때 부부가 차례로 아프고. 다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바이러스를 집으로 가져온다.
그동안 캐나다의 외벌이 시스템이 그래도 가능했던 이유는, 한 사람의 벌이로 대부분의 도시에서 3-4인 가정이 살 수 있는 집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외벌이를 꽤나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새는 상황이 다르다. 아래 내셔널 포스트의 2021년 자료만 봐도 소득 대비 집 값이 (아래 그래프 빨간 선) 천정부지로 치솟아 이제 맞벌이가 아니고는 싱글하우스 구매는 거의 힘들다.
캐나다는 집값 상승분이 소득 상승분을 훌쩍 넘어섰다.
아래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밴쿠버는 소득이 23만 불 (약 2억 3천만 원) 이어야 집을 구매할 수 있고 토론토는 소득이 21만 불이어야 집을 구매할 수 있다. 2018년 캐나다 전국 평균 48만 불 (약 4억 8천)이었던 집 값이 2023년 70만 불에 육박하게 됐다. 5년 사이에 약 45%가 상승한 셈이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캐나다 중간 소득은 (median income) 세후 $68,400이다. 이를 바탕으로 유추하자면, 밴쿠버와 토론토는 반드시 맞벌이가 필요하고, 캘거리나 오타와는 외벌이 + 한 사람은 파트타임 수준은 돼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캐나다에서 집 구매 시 필요한 연봉 (도시 별, 2023년) - statista.com 제공
아이를 혼자 둘 수 있는 연령이 정해져 있는 것과, 학교 시스템 때문에 외벌이를 강요하던 캐나다. 몇몇 도시에선 외벌이 옵션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지금. 학원 스쿨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데 학교 시스템 마저 맞벌이 부부에 맞춰져 있지 않다 보니 연봉 대비 살만한 지역을 찾아 이주하는 캐내디언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트렌드가 되어 버린 듯하다. 이런 이유로 캐나다 사람들이 캘거리나 에드먼턴이 있는 앨버타주로 몰리고 있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가정 형편에 맞춰 적어도 선택의 기회가 있는 곳으로 이주 중인 것이다.
아이들과의 지금 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너 좀 있으면 문 닫고 들어가서 엄마랑 얘기도 안 할 거잖아'라는 말을 종종 하지만, 곧 피부에 와닿을 진실이 될 것이다. 그곳이 캐나다던 한국이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맘 편하게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놓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