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다음 날 부랴부랴 기프트카드를 사서 하교하는 아들 손에 쥐어 주었다. "얼른 다시 들어가서 선생님 갖다 드리고 와. 생신 축하 드린다고 다시 말하고!!"
첫 아이는 가정 보육을 했던지라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야 알게 된 게 있다. 캐나다에서는 때에 맞춰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 크게는 크리스마스와 학기 말. 선생님에 따라서는 생신과 스승의 날 (교사의 날 같은 게 있다)이 그런 때이다.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 뭘 드려야 하는지 분주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의 댓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나도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를 들어보니 대게는 캐나다 국민커피 팀홀튼 기프트 카드를 주는 것 같았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이 한 반에 30명 정도였는데, 학부모들이 모두 팀홀튼 카드를 주면 선생님들이 난감하지 않으실까 싶어서 담임 선생님과 보조교사 선생님께 위너스 (쇼핑용) 기프트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드렸다. 두 분이 엄청 좋아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해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길목에서 통행을 도와주시던 자원봉사자 분이 계셔서 그분께 팀홀튼 카드를 드렸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서는 다른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첫날. 둘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 아침마다 마셔요. 이거 없으면 못 산다니까요."
'아. 이번 담임 선생님은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만 드리면 되겠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뭘 드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 분은 본인 생신이 언제인지 알려주시지 않아서 (혹은 아이가 그때 학교에 빠졌을 수도 있다) 따로 선물을 챙겨드리진 못했다.
캐나다에서 교사를 하는 분들의 얘기나, 엄마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드리는 25불짜리 기프트 카드와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것들을 선물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상당한 금액의 현찰을 주는 캐내디언 엄마들도 있었다.
대놓고 자기가 원하는 걸 얘기하는 교사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다 (스벅 정도는 애교니까). 엄마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담임 선생님이 원하시던 비싼 보석을 선물했다는 얘기를 건너서 들었을 뿐이다. 내 세상의 얘기는 아니지만, 부모라 그런지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포모랄까 (Fear of Missing Out. FoMO - 나만 안 하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
난 은연중에 캐나다에는 이런 문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촌지가 캐나다에도 있다는 사실에 적지않이 놀랐었다. 포트럭 파티나 (potluck) 더치페이가 (separate bills) 너무나 당연한 문화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촌지 문화는 내가 학교 다닐 때나 있었던 구시대 유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김영란법이 생기고, 뇌물과 촌지 같은 관행들이 모두 낡고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였던가. 캐나다에 와서 마주치는 이런 자연스러운 촌지 문화는 때때로 나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는 팁과 로비가 당연한 나라다. 그래서 로비문화가 꽤나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십시일반 모아서 모금을 하거나, 학급 단위로 기부를 하는 것도 문화의 큰 부분이라 그 비슷한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한 공직사회에서 근무하는 나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부모로서는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제대로 하고 있나 걱정부터 되는 촌지문화. 요새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분간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늘 자잘한 선물, 봉사활동, 기부로 바쁠 예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