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이유

엄마의 선견지명

"자, 테이프에 들리는 단어를 따라 해볼까?

"애~쁠"

"무슨 뜻이라고?"

"사과요"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가 처음 정규교육 과정에 들어오던 때였다. 주위에 영어 공부를 따로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영어가 점차 한국 사회에서 중요해지려는 시기였달까. 그런 시기에, 나는 엄마의 영어사랑과  선견지명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눈높이 영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웃긴 게,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과외를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꼬박꼬박 나를 보내려던 곳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모 영어학원 원어민 회화반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중국어도 잘했으면 싶어 하셨는데, 대학 때 한 학기 들은 중국어 수업을 끝으로 중국어를 배우지 않자 아쉬워하실 정도였다.

결국 나의 과외 공부는 영어 회화 하나로만 끝나게 되었지만. 난 우리 엄마표 선견지명 덕분에 지금 캐나다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냐면,

눈높이 영어를 하면서 테이프로 배운 발음이 효과가 좋았는지,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나는 눈높이 영어 선생님이 좋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금방 영어를 꽤 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에서 발음이 가장 좋은 아이, 영어 성적이 좋은 아이. 영어에 관련된 질문이 있으면 먼저 찾게 되는 아이. 어느새 나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어가 재밌어졌고, 더 잘하고 싶어 져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놀랍게도, 중학교에 한 분, 고등학교에 한 분. 정말 영어를 잘하던 영어 선생님 두 분을 만나 영어를 더욱 좋아하게 될 수 있었다.

사실 중학교 영어시간은 나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이 모두 기다리는 시간 중 하나였는데,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수업 마지막 10분 동안 일본 소설인 빙점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셨기 때문이다. 원조 K-엔딩. 그야말로 절묘한 시점에서 종이 치고, 애들이 "아~~~ 선생님!!!"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 보자. 숙제 꼭 해오고" 하면서 유유히 사라지시곤 했다.

광복 후 가장 성공한 일본 소설이었다는 빙점은 뭐랄까, 정말 긴장과 클라이맥스가 많은 소설이었다.

'상사의 부인에게 호감을 품은 한 남자가 상사의 부인에게 고백을 했다. 그 부인은 고백을 거절했지만... 그날 밤 딸아이가 살해당한 채로 숲에서 발견되고 만다. 살인 사건 조사를 하던 중 결국 그날 자신의 부하직원이 집에 들른 것을 알게 된 남자. 부인이 바람을 피우느라 딸아이를 돌보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오해를 하는데....'

중학교 영어 선생님은 소설만 맛깔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영어도 잘 가르치셨고, 발음도 참 좋았다. 그때 배운 영어 공부법 하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공부법이다. 너무 쉽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영어 선생님은 영어도 물론 잘 가르치시고, 발음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한 대학교 영어 프로그램에 추천해 주신 덕분에 1학기 수시로 정말 쉽게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신 은사님이다.

3학년 때 영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더러 더 분발하라며 고등학생에게 토익시험을 보라고 하셨던 분. 우리는 자습시키고 본인은 해리포터 원서를 읽던 그분 덕에 영어 원서 읽기에 눈을 뜨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당연하다는 듯 영문과에 진학했고, 교직 이수를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대학원을 포기하고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는데, 결국은 언어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영어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결국 공부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른은 제2외국어 배우기가 왜 이렇게 어렵나?'

'왜 애들은 영어를 쉽게 배운다는 걸까?'

내 뒤통수를 간지럽히던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떠난 언어학 여정. 그렇게 어느덧 나는 언어학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