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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y 06. 2024

기본 소득에 기댈 것인가

평생직을 만날 것인가

기본 소득제에 대한 생각

AI가 등장하고, 많은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기사를 볼 때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AI가 웬만한 일을 다 하게 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기본 소득제에 기대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게 아닐까?' 하고.


기본소득제란 아무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정부에서 지급하는 제도로, 기본 소득만으로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책정하여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최저소득이 아니라 한 사람이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일을 안 해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어느 누구나 혹할만한 제안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라면 더할지도 모르겠다. 사토리 세대는 돈이나 명예욕, 출세욕도 없고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득도의 세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믿음에, 처음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불러온 깨달음인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기본 소득제가 가져 올 안정과 평화는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기본 소득제에서 양극단을 예측한다. 우선, 사람들이 먹고살 걱정이 없다면 좀 더 창조적인 일에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쉽게 번돈 쉽게 쓴다고, 돈을 공중에 날려버릴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 그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결국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일은 없이 소비만 하는 삶을 사는 것. 즉, 기본 소득제를 통해 소득이 생기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사람들이 공돈을 받으면, 이들의 소비 생활로 인한 돈의 순환 말고는 사회에 돌아 올 이득이 없으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뉴스위크에 따르면, 2015년 핀란드 정부에서 도입한 기본 소득제는 경제적인 효과나 고용률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세금 부담만 가중되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불만만 사게 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기본 소득제 도입 실험이 여러 국가에서 아직 뒤따르고는 있으나, 일부에게만 지급하는 기본 소득제는 결국 심리적, 실제적 불공평성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창조성을 끌어내기 위한 기본소득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제를 도입하는 경우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말 그대로 일은 AI가 하고, 그 과실을 우리가 먹는 삶. AI가 못하는 일에만 힘을 쏟으며 사는 세상...이랄까?


평생의 직에 대해서

나는 게으름뱅이다. 베짱이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싶진 않아도 베짱이처럼 사는 게 개미보단 더 낫지 않나 생각한 경우가 꽤 된다. 나 같은 올빼미 족에게는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루틴의 삶은 반갑지도, 즐겁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유유자적하는 삶. 이와 같은 이상향이 과연 유토피아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게는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 남을 도와주고 싶은 욕망, 다른 것을 더 좋게 만들고자 만드는 욕망이 있다. 사토리 세대라 하더라도, N포 세대라 하더라도 자기가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찾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기준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상관없이.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게는 세상에 기여하고, 나를 발전시키며, 더불어 나아갈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유의미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직장에 메여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그 한 가지. 그 한 가지를 위해서 가는 길에 직장생활이 하나의 방법으로 놓여있을 순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장을 돈 버는 수단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경우 각각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돈만 보고 다니는 직장은 결국 다니는 것 자체가 고욕이 된다. 자신과 직장을 동일시하면, 퇴직, 퇴사, 이직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고 만다. 


따라서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횃불이 무엇인지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마지막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우린 "어떻게"를 너무 많이 고민하느라 "왜"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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