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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y 15. 2024

방문을 톱으로 구멍 낸 사연

방 탈출을 진짜로 하면 이렇게 되나?

우리 부부에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상대방이 일하는 시간, 특히 회의가 있는 시간에는 전화하지 않는다는 룰이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우리에겐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상대방에게서 문자나 카톡대신 전화가 온다는 얘기는 엄청나게 급한 상황이 있다는 의미로 서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즉, 내가 회사에 있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오면 우선 전화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거나 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경우라고 보면 된다. 


사실 그날의 전조 같은 건 별게 없었다. 너무 평범했던 날이어서 그날의 날씨도, 내 옷차림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회사에서 울린 내 전화기에 찍힌 두 글자. 허니. 허니 옆에 붙은 하트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니 무슨 일이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여 안고 전화를 받기 위해 얼른 자리를 피했다. 


"자기야. 큰일 났어? 어떻게 해?"

다짜고짜 신랑의 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왜! 무슨 일인데?"

"둘째가 방 안에 갇혔어"

??????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린가!

"무슨 소리야? 문 열면 되지"

"첫째가 방문을 잠그고 나와서, 애가 방 안에서 계속 울기만 해"


그렇다.

아직 말귀를 잘 못 알아먹는 두 돌 반 아이에게 문 손잡이에 달린 걸 돌리면 열린다는 얘기를 해 봤자 먹히지가 않는 거다. 애는 방 안에 갇힌 채 벌써 몇십 분째 울기만 하고 있다는 거다.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 문을 따면 되지 나한테 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지던 찰나.


"자기야. 톱으로 방문 잘라도 돼? 전주인이 놓고 간 열쇠 중에 맞는 것도 없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안돼. 이러다 애 숨 넘어가겠어.... 그거 괜찮을까 싶어서 전화했어"

"응. 그래 그러자"


나는 흔쾌히 그러고마 했다.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열쇠공을 부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열쇠공을 부르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가끔 열쇠가 너무 복잡하면 열쇠를 따 주지 않는 사람도 있고. 당장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분명했기에 망설임 없이 예스를 외칠 수 있었다. 


"웅~"

곧이어 카톡이 오는 진동 소리가 들리고,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실전 방 탈출


우리 둘째의 실전 방 탈출이 낳은 결과다. 실제 방탈출 카페에 가서 방을 탈출하지 못하면 벽이라도 뚫을 기세라고나 할까. 



캐나다는 기술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참 비싸다. 열쇠공도 마찬가지다. 출장비에 수리비는 별도. 한국으로 치면 보일러 같은 걸 점검하려고 해도 출장비가 우선 10만 원. 뭐가 조금만 고장 나면 앉은자리에서 100만 원은 우습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부르는 데 머뭇거리게 되고, 뭐든 셀프로 하게 된다. 자연스레 집을 고치는 기술과 지식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각양각색의 공구를 하나씩 모으게 됐는데, 톱도 그중 하나다. 작은 톱부터 데크를 제작할 수 있는 전문 목수 스타일 톱까지 갖추고 있다. 


이젠 잠근 방문쯤은 카드로 안되면 문짝 채로 뜯어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캐나다에서는 뭐든 고장 나면 우선 돈 깨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사람 안 부르고 해결할 수 없을까. 부른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기는 할까. 누구한테 추천을 받아야 하나. 우선 그런 고민부터 된다. 돈은 들만큼 들어도 좋으니 제대로 고쳐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한국이 참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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