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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un 17. 2024

술 땡기는 아침

정지아 작가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오랜만에 누려보는 일요일 아침의 여유.

한국 알라딘 중고 서적에서 집어온 정지아 작가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집어 들고 한 번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유명한 정지아 작가의 음주 예찬 에세이다.

패스포트, 캡틴큐, 매실주, 막걸리, 시바스리갈, 로열살루트, 발삼, 맥캘런, 블루, 코냑 그리고 요즘 새로 맛을 들이고 있다는 이슬이에 이르는 술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함께 하는 정지아의 사람들, 우리네 인생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정지아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캐나다 이곳 지인이 건네준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어떻게 이런 글을 이런 구성으로 또 이런 표현으로 쓸 수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읽어 내려갔었다. 글을 읽는 내내 전율이 계속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바꿔버릴 만큼 정지아 작가의 글은 내 눈을 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입 안에 든 시바스리갈, 그러니까 위스키 한 모금을 오래도록 머금었다가 천천히 삼켰다. 그날 처음으로 30년간 나의 일부였던 식도와 위의 위치와 모양을 구체적으로 체감했다. 위스키가 훓고 간 자리마다 짜릿한 쾌감으로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한지 정말 정작가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런 정작가가 알고 보니 술꾼이었다.

그녀의 술이야기 속에 우리네 희로애락 인생이야기가 진하게 녹아있다.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만취한 원숭이가 사자의 리를 밟고 날아오르는 어느 초원의 밤처럼, 사람 사이의 놓은 장벽이  허물어지는 경이로운 순간에 대한 애주가 정지아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나도 남편이 꼬불쳐둔 글렌 모랜지를 당장 까서 한잔 음미하며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솟았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술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대학 1학년 신입생 환영회 때 소주를 잔에 받으라는 선배를 향해 "저는 술 마시러 대학에 온 게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선배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애송이 같았던 내가 이젠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 정지아 작가의 술예찬 이야기에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는 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술의 힘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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