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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Sep 20. 2024

울고 싶어라 | Vision Quest Scramble

캐나다 록키 하이킹 - 2권

나는 산을 많이 다녔다.  

그런 내가 산에서 너무 힘들어 땅에 주저앉아 버린 곳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울고 싶었다. 


코스는 짧지만 아주 가파른 곳, 돌과 흙이 아주 미끄러지기 좋은 배합으로 섞여 있어 한국에서 가져온 오래된 등산화로는 산을 타는 게 위험했던 곳,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조그만 나무 그늘 하나 없었던 곳, 바로 Vision Quest Scramble 트레일이다. 


이곳에 오를 때는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1. 그립이 좋은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 - 올라가는 길은 힘겹게 오른다 해도 내려오는 길에 엉덩방아부터 시작해 대자로 넘어지는 걸 피할 수가 없다. 운동화 신고 올랐다간 큰코다친다. 

2. 장갑 - 가팔라서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네발을 사용할 경우가 많다. 

3. 하이킹 스틱 - 하산 시 매우 도움이 된다. 


Rocky Mountain House를 거쳐 11번 하이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Nordegg을 지나 Abraham Lake 거의 남쪽 끝에서 하이킹 트레일이 시작된다. 처음 10분만 올라가면 바로 시야가 열리며 오른쪽으로 Abraham Lake의 멋진 뷰를 계속 보고 가기에 지루하진 않다. 그리고 조개 화석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찾을 필요도 없다. 그냥 밟고 가는 바위에 조개들이 박혀 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더운 여름날 11-2시 산행은 절대 피해야 한다. 하이킹 시작 10분 후면  tree-line을 벗어나기 때문에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게 된다. 이곳을 처음 산행했을 때 아침 일찍 에드먼턴을 출발해 4시간 후에 산행을 시작했다. 한여름 가장 무더운 시간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아주 힘들게 올랐고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들었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 가져온 10년도 넘은 낡은 등산화로 버티고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과 스크리 (scree: a mass of small loose stones that form or cover a slope on a mountain), 발을 디딜 때마다 쭈욱 쭈욱 미끄러졌다. 하늘을 보고 뻗을 정도로 몇 번 심하게 넘어지고 이글이글 태양아래 지쳐 주저앉아 버렸다. 이곳에 다녀온 후 하이킹 난이도는 Vision Quest 보다 어려운지 Vision Quest 보다 쉬운 곳인지가 나의 기준이 된 곳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옥빛 호수, 사진은 멋지지만 힘든 곳이었다. 

그다음 해 5월 말, 이곳을 다시 방문했고 두 번째 산행은 수월했다. 일단 더운 여름을 피했고, 그리고 200불이 넘는 새로운 등산화가 빛을 발해 주었다.  


Date: 2020년 7월 31일, 2021년 05월 29일

Length: 왕복 6.4km

Elevation gain: 882m

Alltrails: https://www.alltrails.com/trail/canada/alberta/vision-quest-ridge-scramble-2


이렇게 흔하게 밟히는 게 조개화석이다. 너무 신기하다.


그 옛날 이곳이 바다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샀던 10년은 더 된 등산화 (왼쪽), Vision Quest 하이킹 후 과감히 이 녀석을 버리고 Oboz 빨간 새 등산화를 마련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며 수도 없이 미끄러지고 대자로 뻗기도 몇 번, 드디어 나무 그늘을 찾았다. 정말 저 때 울고 싶었다.


등산을 하고 하산하는 길이면 나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다. "야, 너 어떻게 이 힘든 길을 올라왔냐?" 


산에 오르는 것은 나에게 mental shower다. 모든 잡생각을 잊어버리고 단순해진다. 그리고 내가 쥐고 있었던 문제들이 아주 작아진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른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은 빨간 등산화, 요놈이 지난 몇 년간 하이킹을 할 때마다 정말 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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