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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Feb 10. 2023

나는 하키맘이었다

단풍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무조건 하키다. 캐네디언의 하키 사랑은 한국인의 축구사랑보다 더할 것 같다. 캐나다 vs. 미국의 하키 경기는 한국 vs. 일본의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하키맘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키를 하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엄청난 시간 commitment가 요구되기 때문에, 하키맘하면 (약간은) 존경하는 또 한편으론 짠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키시즌은 9월 초 tier를 정하기 위한 evaluation을 시작으로 겨울 내내 6개월 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매주 한 번의 연습과 한 번의 게임 (플레이 오프 시즌에는 2-3번의 게임)에 참석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좋은 시간대에 링크가 배정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밤늦게 또는 꼭두새벽에 게임이나 연습이 있다. 그리고 게임과 연습이 이루어지는 링크장은 타운 안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근교 도시로의 라이드도 다반사다. 게임자체는 한 시간 반이지만 게임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서 드레싱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날의 게임에 대한 얘기를 코치들과 나눈다. 그래서 게임이 있는 날에는 commute 시간까지 합하며 4-5시간의 commitment를 각오해야 한다. 링크에서의 플레이만큼 아이들에게는 드레싱룸에서 나누는 친구들과의 수다 또 벤치에서 코치 또 팀원들과 소리 지르며 응원하는 것도 kids/youth하키의 큰 부분이다.   


다섯 살에 이곳 캐나다로 건너온 영진이는 초등학교 2학년에 하키를 시작해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꼭 9년을 했다. 하키를 했던 지난 9년 동안 아빠 코치들의 열정 어린 가르침과 함께 친구들과 팀을 이뤄, 링크 위를 누비며 많은 추억과 잊지 못할 순간들을 쌓았다. 하지만, 9살 영진이가 처음으록 하키를 시작하며 속했던 Super Sonics팀을 가장 잊을 수가 없다. 15명의 팀원 중 영진이만 유일하게 하키를 처음 시작한 아이였다. 하지만 헤드코치 Bill의 따뜻한 격려와 자상함이 영진이를 그 이후로도 하키를 즐기며 계속할 수 있게 했던 큰 동력이었다. 그리고 처음 하키를 접하는 우리 부부를 향한 그의 배려와 격려 또한 우리가 9년 동안 영진이의 하키를 서포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프의 아빠인 Bill은 키가 190이 넘는 장신이다. 경기가 끝난 후 드레싱 룸에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앉아 오늘 어떤 걸 잘했는지 칭찬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시즌동안 영진이게도 또 부모인 우리에게도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다. 어린아이들 하키에서는 골리 (goalie)를 서로 돌아가면서 한다. 익숙지 않은 골리 장비들을 몸에 덕지덕지 달고 온몸으로 퍽을 막아내야 한다. 비록 집에서 연습은 하고 갔지만 상대편의 퍽을 막아내기 위해 온몸을 써야 한다는 것에 영진이는 익숙지 않았다. 서서만 퍽을 막으려 하며 1st period에서만 내리 세 골을 내주었다. 관중석에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부모들과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좌불안석이었고, 저기 홀로 골대를 지키고 있는 영진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2nd period부터는 몸을 던지고 넘어지며 막으려 해서 몇 개는 막아냈다. 막아낼 때마다 같은 팀 부모들은 영진 굳잡, 고우 영진을 외치며 격려해 주었다.  5대 3으로 진 경기, 경기 내내 참 괴롭고 힘들었다. 다행히도 시즌 중반 이후로 골리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생겨서 영진이에게는 다시 골리의 기회가 없었다.    


Right wing으로 시작했던 포지션은 센터로 바뀌었고, 어느새 6개월이 지나 시즌 마지막 플레이오프에 접어들었다. 1, 2위를 결정짓는 시즌 마지막 경기는 2대 2 동점 그리고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오버타임은 코치들의 strategy 싸움이다. 5 to 5에서 득점이 없었고 이제는 4 to 4. 코치 Bill이 베스트 포워드 영진이와 제프를 함께 집어넣는다. 영진이의 기막힌 패스 그리고 제프의 마무리 슛... 관중석은 난리가 났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은 아니지만 아이들, 코치, 부모들에겐 이만한 금메달이 없다. 시즌 마지막 경기 그리고 멋진 플레이. 드디어 시즌이 끝났다는 속 시원함과 다음 시즌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같은 팀원 아빠가 하루는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오셔서 경기 내내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으셨다. 본인 아이 사진을 담으신 줄 알았더니 팀 모든 아이들을 찍으셔서 year-end 파티 때 액자에 담아 선물로 주셨다. 10번 영진이의 사진도. 너무 귀한 선물이었다.    


Year-end 파티는 gymnasium에서 있었다. 평소 얼음 위에서 날아다니던 아이들이 짐에서 날아다녔다. 영진이도 날아다녔다. 코치 Bill이 우리 부부를 부른다. "영진이 하키 계속 시켜요. 두고 봐요. 영진이 아주 잘할 거예요" 하키는 얼음 위에서 스틱 들고 하는 스포츠,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는데 Bill의 격려는 마법처럼 영진이와 우리에게 스며들었고 힘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영진이는 아이들 팀의 assistant coach로 봉사하며 또 아이들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아참, 아이들 하키 리그는 모든 부모들이 함께 volunteer로 역할을 맡아 팀을 꾸려 나가야 한다. 어떤 부모들은 코치, 부코치, 팀매니저, time keeper, 경기 도우미 등등 봉사할 일은 너무 많다. 나는 Super Sonics의 저지(Jersey) 맘이었다. 원정경기 홈경기에 따라 팀저지를 챙겨가고 나눠주고 중간중간 더러우면 깨끗이 빨아가는 세탁담당이었다. 어린아이들 팀의 저지맘, 아이들의 땀냄새는 아직 꼬숩기만 했다.  


2014년 1월 어느 날, 남편이 레이크루이스를 통째로 빌려 놓았단다. 영진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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