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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Feb 05. 2024

고인 물이 되긴 싫은데

캐나다 직장인의 소소한 일상

2030년내가 55세가 되는 해이고 나는 은퇴를 꿈꾸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년 뒤이다.


55세, 은퇴하기 이른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시간과 돈사이에서 어떤 것에 의미를 두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시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과 이미 합의를 봤다.


15년 전 캐나다에 이민온 후, 나는 이곳 대학 캠퍼스에서 일을 해 왔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은 다운타운 캠퍼스에서 일했다. 그때 같은 부서의 동료가 은퇴를 7-8년 정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본인 업무에 능수 능란했다. 하지만 자기 일이 아닌 시시 때때 발생하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아주 병적일 만큼 싫어했고 본인의 boundary를 매우 확고하게 지켜 나갔다. 그리고 본인의 일을 슬쩍 남에게 떠넘기는 수완은 매우 뛰어났다. 결국은 full pension을 받을 나이 (65세)에 이르렀고, 그녀는 은퇴를 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이 들어서 절대 저렇게 일하지 말자라고 다짐했었다.   


앨버타 주정부의 post-secondary education에 대한 지원 축소로, 이곳 대학교들은 비명을 지르며 모든 곳에서의 예산 감축을 실행하며 지난 10년 동안 긴축 재정으로 버텨왔다.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학생들에겐 매년 인상된 tuition (주정부가 tuition 인상은 허가해 주었다)을 부과했다. 그리고 조직 변화와 직원 감축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지금 현재 있는 일하는 사무실도 몇 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감축된 직원수로 버티고 있다. 레이 오프로 이곳을 떠난 동료들도 있지만,  살아남은 자들 또한 떠난 직원들의 몫까지 일을 감당하고 있다. Academic staff과 non-academic staff 모두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 지 어언 10년이 넘은 것 같다.     


나는 지난 여름 새로운 포지션으로 옮겨 아직도 배우고 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15년 차 직장인인 나도 이제는 수완이 많이 좋아졌다. 내가 요즘 사무실에서 성경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있다.

"The Art of Saying NO"

이 책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리고 백퍼 동감한다.



"Self-care isn't selfish. It's necessary. The problem is, if you're constantly saying yes to other people, putting their priorities ahead of your own, you won't have the time or energy to care for yourself.

Keep in mind, you're not responsible for solving other people's problems. That doesn't mean you shouldn't help people. Rather, the best way to help people over the long run is to ensure your needs are met first.

In other words, make sure that self-care has a higher priority than giving care. "



해야 할 업무는 너무 많은데 주인을 잃은 업무들이 서로 간의 이메일에 "이거 누가 이제 담당해??"라는 물음표를 달고 이 사람 저 사람 이메일을 통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어쩌다 한번 그 일을 하게 되면, 그게 내가 담당하는 일이 되어 버리기가 다반사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 금요일,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사람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내 속에서는 "그럼 네가 해"라는 말이 솟구쳤다.


이기적이라 생각했던 10년 전 그녀가 요즘 많이 생각난다. 은퇴를 앞두고 본인의 업무 이외에는 철벽을 치던 그녀가 어쩌면 똑똑했을까? 우리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 동료가 있다. 나와 업무적으로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는 포지션이다. 아주 smart 하고, 예의 바르며, 사려 깊게 일을 처리하고, 석사학위까지 있는 친구이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거의 매일 오후시간이면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 동료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10년 전 그녀의 모습은 아닌지 염려된다.


정말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함께 일하기 위해  


남편은 은행에서 일하는 전문 재무 상담가다. 며칠 전부터 늦은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종이 두장에 메모를 해서 들고 왔다 갔다 한다. 뭔가 나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 듯하다.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는, 나는 55세 은퇴, 남편은 60세 은퇴로 합의를 했었다. 근데 요즘 인플레이션이며 노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니  우리의 계획에 변동이 필요한 눈치다. 나에게 60세 은퇴를 슬쩍 얘기하더니, 어제는 내 pension이 좋다고 치켜세우며 내가 65세까지 일을 할 수는 없는지 농담 삼아 그의 진심을 전한다.  


어이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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