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바닥을 찍은 나는 다행히 요즘 점점 상승모드에 있다.
생일날 아침 속상함을 아들과 남편에게 모진 말로 쏟아냈다. 그리고 지인들과의 점심 약속이 어그러지고 나의 기분은 바닥을 쳤다. 그래도 글은 쓰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도 흘렸다. 밤이 되자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마음에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 엄마가 menopause depression인 것 같아. 아침에 너에게 말 함부로 하고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문자를 보내자마자 아들이 2층 침실로 뽀로로 달려온다.
"엄마, menopause depression이 뭐예요? 제가 봤을 때 엄마는 bipolar disorder 인 것 같아요"
뭐 bipolar disorder??? 정확히는 모르지만 뭔가 영어 단어에서 풍기는 냄새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해 보니 아들이 본 엄마는 "조울증"이었다. 아들을 키우며 엄마아빠를 지켜보는 아이의 눈은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함을 느껴왔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떤 때는 너무 에너지가 넘치고 어떤 때는 너무 바닥을 치는 모습의 엄마를 대학생 아들이 정확히 짚어낸다. 내 브런치 스토리를 봐도 그 냄새가 난다. 첼로 콘서트를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점심시간 짐에 가서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열심히 뛰기도 한다. 그리고 어디서 에너지가 나는지 풀타임 본업 외에 웨이트리스 파트타임 투잡을 뛰다가 어느 순간 풍선에 바람 빠지듯 가라앉는다. 내가 왜 이 나이에 깜깜하고 추운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는지, 가끔 남편이 꼴 보기 싫은 날이면 더 루저가 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어제 내 상황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나눴다. 우리 그룹에 속한 70대 후반 할머니가 나에게 큰 소리로 "집사님은 지금 제~일~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어요. 감사하고 즐겨요"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의지적인 노력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 보자.
감사하자. 일할 수 있는 직장 주심에, 또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심에, 또 함께 출퇴근하고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주는 가족이 있음에, 또 홈홈 스윗홈이 있음에, 부모님 형제자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음에, 또 매일 부딪히는 직장 동료들이 모나지 않고 좋은 사람들임에...
나는 첼로를 더 열심히 해보려 한다. 선생님께서 9월에 두 번째 콘서트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 콘서트 때 연주곡으로 "10월의 멋진 날에"를 골랐다. 원래는 솔로 곡으로 골랐는데 선생님이 듀엣을 하자고 하셨다. 저녁마다 열심히 연습해서 내 첼로 소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선생님과 함께 멋진 무대를 만들고 싶다.
운동을 계속 하자. 지난 목요일, 한참 트랙을 도는데 옆에 예쁜 여학생이 뛸 때 소리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 다리가 의족이었다. 내가 짐에 들어갈 때부터 뛰고 있었는데 내가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느리지만 꾸준히 멈추지 않고 뛰었다. 너무 예쁜 여학생의 또각또각 뛰는 뒷모습을 보며 내가 가진 성성한 두 다리가 너무 감사했다. 점심시간에 하는 짧은 운동은 내 몸과 마음을 리셋시켜 준다.
여행 계획을 잘 짜보자.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들은 아들이 엄마를 위해 주문한 생일 선물이 하루 늦게 도착했다. 여행은 계획하는 시간부터가 시작이다. 5월 남편과 함께 할 한국 방문도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적고 계획해 봐야겠다.
내 삶에 우울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자. 아니다, 어찌 우울이 나를 비켜갈 수 있길 바라는가.
우울이 들어오면 또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 속에 나를 돌아보자. 그리고 또 내 주변을 돌아보자.
삶이 바쁘고 힘들수록
나에게 고요함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세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고
몸이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마음이 지금 어떤 말을 하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거울처럼 비춰보세요.
어디를 가시든 보호받으시고
어디를 가시든 인정받으시고
어디를 가시든 사랑받으시길
<혜민스님 -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조는 길게~ 그리고 울은 짧게~ 그렇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