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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ngineer Jun 13. 2021

게임 기획자 취업기 Ep.01 : 어쩌다 마주친 게임

게임 업계 취업으로 뛰어든 생명과학 전공자

길었던 취업 준비생 생활


저는 2007년에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부터 게임 기획자로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기까지 졸업 이후로 4년이 걸렸습니다. 취포자(취업 포기자)가 될 수도 있을 만큼 긴 공백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게임과 거리가 먼 생명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신입생 때 막연하게 생명과학이 미래 비전이라는 말을 주워듣고 전공을 선택했지만 저와의 궁합은 최악이었습니다. 생명과학은 여전히 첨단 산업이고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그랬기에 앞으로 뭘 해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고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때가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고민과 반성이라고는 없는 무책임한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긴 취업 공백 기간은 무책임한 대학생활의 대가였습니다. 

당시에도 취업난은 심각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100개쯤 넣어야 두세 군데 회사에서 서류 합격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진리와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오랫동안 해야 할 회사 생활을 '아무 데서나' 시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적성에 맞지도 않고 호기심도 없는 일이 어떤 고통인지는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알았으니까요. 그렇게 저의 길고 고통스러운 취업준비생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졸업 후 2년간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하며 가족의 눈칫밥을 먹었습니다. 한 살 어린 동생조차 저보다 빨리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제 또래 취준생들이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부러움을 여과 없이 드러내셨습니다. 저와 같은 전공인 대학교 동기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취업으로 눈을 돌린 동기들은 제약 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취업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던 친구는 복수 전공을 살려 대기업 사원이 되었습니다. 박탈감은 없었지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막막함이 더해졌습니다.


게임 개발 분야를 발견하다


그러던 중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말고 하기 싫은 일을 미래 직업 목록에서 지워보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기 싫은 일보다는 관심 없는 분야를 덜어낸 것 같습니다. 목록에서 지워진 채용 분야는 미련을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채용 공고를 찾았습니다. 채용 정보를 찾으며 소거 작업을 계속하던 중 게임 개발 분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음악, 미술,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게임은 그 모든 요소를 담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미디어 학부의 친구가 졸업 작품으로 게임을 개발 중이었는데 사운드를 담당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도움을 준 경험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수험 준비로 게임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지만 중학교 때까지 게임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록맨(Rock Man. 북미에서는 Mega Man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과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시리즈는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게임이었습니다. 집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컴퓨터도 콘솔도 없었지만 마음씨 좋은 친구가 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함께 게임을 즐겼던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합니다. 오랜 고민이 있었지만 게임 개발 회사 취업으로 선택지를 좁혔습니다.

Capcom이 개발한 Rock Man 6. 제 프로필 이미지이기도 한 Rock Man은 초등학생 때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게임이었습니다.

진로를 결정한 이후부터는 생각과 행동이 빨라졌습니다. 게임 개발사의 채용 공고를 찾았고 어떤 직군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려면 게임 기획/게임 개발(프로그래밍)/게임 아트 중 하나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게임 개발자(클라이언트/서버 개발자)는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대학교 기초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프로그래밍의 기초 수업에서 D+ 학점을 받았던 저로서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분야였습니다. 게임 아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림에 관심은 많았지만 게임 아트는 학습과 훈련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비전공자의 어려움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개발과 게임 아트를 가르쳐 주는 학원 개념의 게임 아카데미도 있었지만 학원비가 부담스러웠고 모든 과정을 이수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기관의 정보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기획 분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공 불문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채용 조건도 다른 분야에 비해 빡빡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른 직군보다 취업 가능성이 있어 보여 게임 기획자를 저의 진로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취업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고 앞으로도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요.



Episode : 0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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