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 내가 즐겨보던 '응답하라 1988' 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 적이 있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랬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러는데 딸이 조금만 봐주라.”
큰딸 보라의 생일에 둘째 딸인 덕선의 생일까지 세트로 묶어서 파티를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항상 자신의 생일은 언니에게 묻혀 서운함을 느낀 덕선에게 아빠 성동일이 한 대사였다.
저 장면의 대사와 감정선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아직 우리 아들은 나이가 어려, 경험하지 못했기에 내가 저 감정까지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 “아빠가 처음이라” 는 대사 부분에서 어떤 알 수 없는 큰 공감을 느꼈다.
와이프와 나는 둘 다 아이의 교육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왔다. 이렇게 말하면 창피하지만, 솔직히 거의 불감증이라 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다른 부모들은 학습지, 체험학습, 학원 등등등 2~3년전부터 자녀들 교육에 열을 올리며 살아가는데, 우리 부부는 그와는 정 반대로 교육, 학습, 학원 등 이런 것과는 거리를 두며 살았다. 오히려 그런 교육보다는 아들과의 친밀감, 놀아주기, 하루에도 100번이랑 사랑한다 말해주기 이런 것들에 더 신경을 쏟으면서 살았다.
무엇이 정답일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인 나의 철학은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는, 책을 많이 보고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 감정표현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학교교육에 대한 나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 때문이었다.(지극히 주관적인)
그 판단의 이유가 정확히 언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이렇다.
내가 느낀 학교교육의 최종 목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고, 또 대학을 들어간 학생들은 다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정운이를 그런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최종적으로는 일 잘 하고 돈 잘 버는 직장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교육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아들이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은 한글이 제 1언어이고, 그런 한글을 사용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최소한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우리 아들이 한글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걱정을 주변 지인들에게 이야기 해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고, 학교가면 다 배운다고 내 입장에서는 공감되지 않는 말들만 줄줄이 했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문해력에 관한 다큐를 보고, 문득 꽤 심각함을 느꼈다. 깊은 고민을 했고, 결국 방법을 찾았다. 힘들겠지만 내가 책임지고 정운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다른 대안으로 학습지도 있고 학원도 있지만 어떤 고집이 작용했다. 왠지 한글은 내가 직접 가르쳐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 부모가 가르쳐주면 안된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었지만 , 나는 자신이 있었다.
직접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ㄱㄴㄷ부터 가나다, 그리고 단어까지 , 한글 프린트 교재를 만들었다.
하루에 한 장씩 출력을 해 설명과 함께 조금씩 한글을 접해주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정운이가 게임할 때는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는데, 한글을 할 때 보니까
그 집중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1분도 집중을 못했다. 아마 하고 싶지 않은거라 그런거겠지.
그런 생각에 혼도 내보고, 칭찬도 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꾸준히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글씨 쓰는 순서도 꽤 잘하고, 쉬운 단어는 일부 읽을 수도 있게 알게 되었다.
조금씩 하다 보면 더 좋아지겠지 . 아니 더 좋아질거라 확신한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잘 따라와주는 정운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