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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아빠 May 09. 2021

첫 필사를 하고..(항소이유서)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살면서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심 매우 놀라웠다.

물론 내 주변의 사례를 본 것이 전부였기에 보편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몇 분 있다. 가장 먼저 나를 낳아주시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 하나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키워주신, 언제나 항상 내 생각만 하시는, 감사하다는 말로는 결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경제적인 관점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반하게 되어 ,  한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을 통해 직접 뵙고 사제지간(?)이 된 김승호 회장님

마지막으로는 지식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사회전반을 바라보는 시선에 반하게 되어 존경하게 된 유시민 작가님이다. 그는 다른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내놓라 하는 지식인이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지식의 소매상이라 겸손히 말하는 분이다.


내가 첫 필사를 한 항소이유서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고와 생각을 본받고 싶은 유시민 작가님이 20대 중반에 부당하게 잡혀들어간 감옥에서 일필휘지로 쓴 글이다. 이 글은 학생운동으로 인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작가님이 자신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어, 항소를 하게 된 이유를 아주 상세하고도 길게, 설명한 글이다.


아마 읽어 본 분들은 충분히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글의 대부분이 명문장이고, 글의 진행도 매우 매끄럽다. 저런 수준의 글을 20대의 중반에 젊은 청년이, 자신의 몸이 수감되어 있는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일필휘지로 썼다는 사실은 감탄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예전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항소이유서를 쓸 때, 그 순간에는 고문을 당하지 않았기에, 최대한 길게 늘려서 썼다고..

그래서인지 간혹 글쓰기 초보자인 내가 보기에도 일부러 길게 늘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문장들도 있었다. 물론 개인의 의견이다.


내가 이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필사하게 된 이유는 다른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첫째는 유시민 작가님을 존경해서 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고, 둘째는 개인적으로 항소이유서가 필사하기에 적당히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분량 이기 때문이었다.


먹여 살릴 가족이 있고 직업이 있기에 한 번에 필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틈틈이 짬나는 시간을 활용해 최대한 한 자, 한 자 집중해 쓰려고 노력하였다.

학창시절 깜지(?)라는 의미 없는 글씨쓰기를 제외하고는 살면서 이렇게 많은 글씨를 쓴 적이 없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너무 오랜만에 한 필기로 인해 손목과 어깨에 적지 않은 부담이 오긴 하였지만, 그래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필사를 했다. 필사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던 시간이었다.


다음 필사를 무엇으로 할 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로 먹고 사는 삶을 살고 싶다..

글쓰기로 먹고 사는 삶을 동경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는,

내가 본받고 따라 하고 싶은 문체를 가진 작가의 책을 다음 필사할 책으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악필이지만 첫 필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아주 뿌듯하고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직 두 사람(김영하 소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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