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나.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후회되는 기억이 하나 있다.
10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30대에 갓 접어든 엄마는 수천만원의 빚과 10살의 아들을 책임져야 했다.
당연히 집안 형편은 녹록치 않았고, 그 형편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집안의 형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철없던 12살 5학년에 접어든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철이 없었다. 없어도 정말 너무 많이 없었다.
그때의 철없던 절정의 기억이 하나 있다.
겨울이 다가올 때쯤이었던 거 같은데, 친구들이 하나 둘 새 패딩를 입고 학교에 왔다. 나는 부러움에 엄마에게 패딩를 사달라고 했다.
겨울이 다가올 때가 되기도 했고, 당시 하루가 다르게 몸이 쑥쑥 자란 탓에 작년에 입던 패딩이 작아져 있었다. 엄마는 패딩을 사준다고 했다.
며칠 후 엄마와 패딩을 사러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옷가게에 갔다.
패션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는 친구들이 입는 스타일의 패딩을 고른 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그 패딩의 가격표를 보고, 잠시 고민을 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나에게 다른 패딩를 고르면 안되겠냐고 했다. 아마 패딩의 가격을 보고 그렇게 말했으리라. 어렴풋한 기억에 그 잠바의 가격은 10만 원 정도 되었던 거 같다.
당시에 10만원이면,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나는 그 패딩이 아니면 안 된다고 떼를 썼다. 엄마는 그냥 다른 패딩을 고르라고, 나는 그냥 사달라고, 그렇게 몇번의 엄마와 나의 줄다리기 같은 대화가 이어졌고, 결국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가게에서 나와 혼자 집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철이 없는 못난 행동이었다.
그렇게 씩씩거리며 혼자 집에서 있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는 그 문제의 패딩을 손에 들고 집에 들어왔다.
아마도 당시의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패딩을 사주고 싶은 마음과, 현실의 어려운 형편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결국 그 고민의 승자는 결국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고...
왜 이 기억이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가끔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기억만 떠올리면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당시의 엄마의 나이가 30대 중후반으로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는데,
내가 당시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당시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아프면서고 슬프고, 또 공감이 된다.
가끔 술을 한 잔 마시다 보면 이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