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했다. 첫째가 6개월 즈음에 이사를 했으니 첫째에게는 이사한 집이 자기에게는 첫 집이었다. 이사한 집은 흔히들 국평이라 부르는 전용면적 85제곱미터, 방 3개, 화장실 2개의 세 가족이 살기에는 충분히 넓은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6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고 입주시점까지는 꽤 기간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살던 집에서 쭈욱 살다가 입주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건 바램일 뿐이었다. 집주인이 집을 매도하였고, 새로운 집주인이 입주를 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즌의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비현실적으로 아주 많이 달아올라 있었고, 이런저런 사정들로 결국 15개월간 지낼 작은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이사 며칠 후, 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처제네 가족이 집들이 겸 놀러 오기로 했는데,
그때 첫째가 말했다. "아빠 그냥 ㅇㅇ네 오지 말라고 하고 우리가 ㅇㅇ네로 가면 안돼?"
와이프와 나는 첫째가 꼭 집어서 말은 하지 않아도 작은 집을 창피해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아들 우리 집이 작아서 창피해?"
"아니 그건 아닌데 장난감도 얼마 없고....그냥!"
약간 주저하듯 말하는 첫째에게 이렇게 이사를 하게 된 상황에 대해 나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7살의 첫째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첫째의 이런 행동과 표정을 보고 문득 아주 오랫동안 기억 저편 어딘가에 묻혀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리 단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면 단위의 조금은 큰 동네로 이사를 했는데 당시 우리 집은 빌라였다. 달동네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은 높은 곳에 위치한 빌라였는데 학교 가는 길에는 당시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가 있었다. 하교 길에 집에 가려면 언덕을 올라가는데, 중간에 아파트 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었다. 친구들과 하교를 하며 언덕길을 오르다가 중간에 빠지는 길로 가는 친구들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때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어린 시절의 아직 철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게 부러움과 어떤 창피함의 감정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그때의 그 감정을 첫째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가련한 마음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첫째도 이제 다 컸구나.라는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경험하고 좋은 것만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건 어느 부모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만 보다는 희로애락 등 많은 감정을 경험하며 자라도록 하는 게 아이의 올바른 인격형성을 위해 더 좋을 것이 아닐까 하고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