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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아빠 Feb 24. 2022

한글공부


나는 어린 시절 학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나름 중학교 1학년까지는 성적이 꽤 좋았지만, 그 이후로 친구들과 노는 재미의 맛을 알게 되면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성적도 거의 꼴등을 유지했다.

와이프도 나와 비슷하다. 와이프님께서 말하시길 "학생 때는 열심히 놀아야 되는 거 아니야?".


둘 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인지 우리는 자녀의 교육에 대해 살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학업 스트레스를 주는 것보다는 행복한 마음을 아주 많이 느끼게 해 주면 아이는 올바르게 잘 자라지 않을까? 혹시 공부를 하고 싶다면 그때 시켜주자. 성적보다는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마음이 안정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가 정운이가 6살이 되었을 즈음 우연히  문해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교실.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교과서의 한 지문을 읽으라고 시켰다. 그 학생은 또박또박 교과서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었다. 그 후 선생님은 무슨 내용이냐고 질문을 했고, 학생은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읽기만 할 뿐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전문가는 책을 읽은 학생의 문해력 수준이 초등 2학년 정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5학년 수준의 수업 내용은 따라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 나는 어쩌면 우리 정운이도 이대로 두면 후에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늘 사용할 언어인 한글을 최소한 학교에 보내기 전에 정확하게 가르쳐서 보내야겠구나.


와이프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한글을 어느 정도 배운다고 했다.

나는 정운이의 현재 수준을 알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한글을 물어봤다. 정운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하며 귀여운 백치미를 뽐냈다.

그렇게 시작된 한글 공부.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조금 막막했다. 와이프는 공부방을 보내거나 학습지를 하는건 어떠냐고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건 몰라도 한글은 꼭 내가 가르쳐주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먼저 유치원에서 배우던 한글 교육책을 펼쳐 보았다. 쉽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디자인으로 잘 만들어진 책이었다. 이 책으로 한번 가르쳐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꽤 많은 반복학습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교재를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 한글 프로그램으로 표를 만들고 맨 위칸에는ㄱㄴㄷㄹ부터 ㅏㅑㅓㅕ까지 쓰고 나머지는 모두 빈 공란으로 만들어서 출력을 했다. 그러고는 단순무식!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서 무한반복 따라 쓰기.

21세기에 맞지 않은 다소 원시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늘 친구처럼 격 없이 함께 놀던 아빠가 맞은편에 앉아서 선생님처럼 가르치니 정운이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때로는 눈물, 콧물로 종이가 찢어지고 서러움의 울음소리로 집안이 가득하기도 했다.

정운이는 집중 시간이 매우 짧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6살의 아이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게 당연하다고 했다.

시작은 하루에 5분,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주면서 놀이로 인지하게끔 같이 소리 내고 같이 따라 쓰고 하며 조금씩 시간을 늘려나갔다.

 

한 달 두 달,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정도 지났을 즈음, 조금씩 정운이의 한글 실력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운이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느리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글자를 또박또박 읽었다.

잘 따라와준 고마움에 눈물이 날 뻔했다. "고마워 정운아. 사랑해 정운아."


이제는 따로 한글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하루에 동화책 한 권씩 소리 내어 읽기. 가끔 정운이가 읽기 싫다고 투정을 부릴 때는, 동화책에 나오는 글자 따라 쓰기나 아니면 받아쓰기.

거의 매일매일을 정운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읽고 쓰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다. 거기에 더해 읽은 동화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도 아주 잘하게 되었다.


정운이가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역시 정운이는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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