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 도입, 모바일 디바이스의 시작
애플은 오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라함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애플세계개발자회의 WWDC 2016을 연다. 애플의 향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행사로 한 해를 조망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대목은 아이폰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iOS10의 면면이다.
스마트폰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뛰어난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도 핵심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망을 형성해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이 둘 사이를 연결해준다.
이 중에 하나라도 삐걱거린다면 제 역할을 해내기 힘들다. 또한 어느 한쪽만 뛰어나다고 해서 모두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드웨어가 뛰어나다고 해도 이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가 미진하거나, 소프트웨어가 뛰어나도 복잡한 절차로 구현되는 UI가 적용됐다면 버림받기 십상이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마음은 앞서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몸은 그렇게 좋은 쓸 줄을 모르는구만”, “간단한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처리하나” 등의 말을 듣게 되는 셈이다.
애플 iOS는 이러한 걱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의 모바일 디바이스는 iOS부터 하드웨어와 UI 디자인을 모두 애플이 직접 도맡는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진영의 경우에는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가져와서 제조업체가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모바일AP를 고르고, 새로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는 등 다소 파편화돼 있다. 하지만 애플의 경우에는 비록 하청업체에 제작을 의뢰하기는 하나 설계나 구성, 배치 등은 애플이 직접 나선다. 흔히 말하는 ‘최적화’ 상태에서 애플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WWDC 2016에 앞서 그간의 iOS 진화발전 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과거를 되짚는 것만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는 처음부터 ‘iOS’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지난 2010년 6월 8일 WWDC 2010에서 애플 전 CEO인 故 스티브 잡스가 기조연설을 통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에 탑재돼 왔던 아이폰 OS를 ‘iOS’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재의 ‘iOS’가 정식 명칭으로 결정됐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떻게 불렸을까.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는 지난 2007년 1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故 스티브 잡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애플의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공개했다. 故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며 애플의 3번째 혁명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에 적용된 모바일 운영체제에 대해 ‘맥 OS X’를 기반으로 한다고 밝혔다. 마케팅 차원에서도 맥 OS X를 전면에 내세우는 편이 낫다는 전략이었다.
iOS의 첫 시작점은 역시나 첫 아이폰의 출시와 명맥을 같이 한다. 아이폰을 통해 상용화됐기에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다. 애플은 미국 이통사 AT&T와 비밀 회동 등의 사전 작업을 통해 2007년 6월 29일 세상에 나왔다. iOS도 이때가 정식 시작점인 셈이다.
애플의 1세대 iOS는 다양한 UI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아이폰을 간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만 해도 멀티터치를 활용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꾹꾹 누르는 감압식이나 단순 정전식 터치만이 가능했던 기존 휴대폰과는 다른 행보였다.
조잡한 버튼을 제거하고 전면에 버튼을 하나만을 배열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초반에는 멀티태스킹을 지원하지 않았다. 작은 화면의 아이폰에서는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는 점을 들어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멀티터치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한 방향으로 미는 ‘스와이프’와 톡톡 두드리는 ‘탭’, 오므리고 펼치는 ‘핀치’, ‘리버스’ 등의 제스처를 인식했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꾸준히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역시나 혁신 그 자체였다.
아이폰이 첫 출시된 2007년에는 현재 쓰이고 있는 애플 앱스토어는 없었다. 애플이 자체 제작한 애플리케이션만 설치가 가능했다. 대신 와이파이를 통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는 사용할 수 있었다.
애플이 1세대 iOS를 상용화한 이후 했던 일은 바로 개발자들을 통한 생태계 확보였다. 2007년 10월 애플은 iOS용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발표했다. iOS용 SDK는 2008년 3월 6일 최초 개발자들에게 배포됐다. 일반 사용자나 개발자들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타 사용자들이 구매하고 내려받을 수 있는 화개장터인 ‘앱스토어’의 문도 활짝 열렸다.
앱스토어 정책은 당시 파격적인 조건이 달렸다. SDK는 무료였다. 99달러의 등록비를 내면 1년 동안 앱스토어에 자신이 개발한 앱을 올려둘 수 있었다. 앱 판매에 대한 수익은 개발사와 애플이 각각 7:3 비율로 나눴다.
앱스토어는 애플이 현재까지 우월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초기 시절 앱스토어는 500여 개의 앱만이 올라와 있었지만 현재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2008년 7월 11일 2세대 ‘iOS2’가 발표됐다. '아이폰3G'에 탑재됐다.
앱스토어로 촉발된 애플의 파격은 계속됐다. 애플이 iOS 무료 업그레이드를 지원했다. 즉 1세대 아이폰도 iOS2를 적용할 수 있었다. 현재는 차기 버전의 업그레이드가 당연시되나 예전에는 ‘업그레이드’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모바일 운영체제라고 부를 만한 소프트웨어도 전무했고, 차기 버전을 사용하려면 아예 새 휴대폰을 구입해야만 했다. 제조업체의 전략이기도 했다. PC운영체제의 경우 새 버전이 출시되면 항상 유료로 풀렸다.
애플의 파격은 결국 파편화된 안드로이드 진영까지 넘어가게 됐다. 파편화에 따른 어려움이 있긴 했으나 안드로이드 사용자도 애플 iOS와 마찬가지로 새 버전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결국 안드로이드 진영도 차기 버전에 대한 무료 업그레이드가 시작됐고, 현재는 필수적인 사후 서비스로 여겨지게 됐다.
물론 ‘옥의티’가 있긴 했다. 아이팟 터치는 iOS 업그레이드시 9.99달러를 내야 했다.
iOS2는 국내 사용자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iOS2부터 한글을 정식 지원했다. 아이폰 한국 출시를 기대케한 대목이었다. 국내서는 아이폰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전이 iOS 생태계 구축 단계였다면 2009년 6월 17일 발표된 iOS 3 버전부터는 본격적인 아이폰 열풍이 불어 닥친 시기다. 2008년까지 1000만 대 이상의 아이폰 판매량을 달성했지만 이보다 더 높은 판매량 상승을 가져왔다. iOS3는 아이폰3GS에 탑재됐다.
iOS3는 그간 불편했던 점을 최대한 개선한 버전이다. 복사 및 붙여두기가 가능해졌다. MMS도 지원했다. 테더링은 물론이거니와, 개선된 GPS 기능, 블루투스를 통한 P2P 통신 지원 등 여러 부분이 업그레이드됐다. 주소록과 일정 등도 공유됐다. 일반 사용자들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아이폰 활용이 논의됐다.
2009년 11월 28일 드디어 국내 ‘아이폰3GS’가 상륙했다. KT를 통해 단독 판매된 아이폰3GS는 큰 인기를 끌며 100만 대 가까운 판매량을 달성했다. 국내 사용자에게는 iOS3이 첫 정식 버전인 셈이다.
해를 넘긴 2010년 4월 3일 아이폰과 더불어 애플의 새로운 모바일 디바이스인 ‘아이패드’가 등장했다. 아이패드 크기에 맞게 1024x768 해상도를 지원하는 iOS 3.2 버전이 배포됐다. 세간에서는 아이폰을 크게 늘려 놨을 뿐, 경쟁력은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태블릿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모델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