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韓 정보통신, 경쟁을 심다
1980년대 중반, 한국 통신산업은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서 있었다. 체신부로부터 각각 분리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는 유선전화, 데이터통신, 이동통신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독립적인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망은 한국전기통신공사, 데이터를 전송하는 유선망은 한국데이터통신, 무선을 기반으로 한 호출과 차량전화 서비스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각각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네트워크의 기반과 운영은 여전히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장악하고 있어, 두 기관은 사실상 종속적 구조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술의 융합과 글로벌 압력은 기존의 역할 구분을 흐리기 시작했다. 특히 1986년,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국 도서지역까지 수동식 전화를 자동식으로 전환하는 전국자동통화체제를 완성하면서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1) 이는 서비스의 대중화이자, 동시에 보다 고도화된 통신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촉발하는 기점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86년 출범한 우루과이라운드(UR)는 통신서비스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리며,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한국에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명분을 강화했다. 특히 한미통신실무협의회를 통해 미국은 한국의 통신 독점 체제를 비판하며 개방 압력을 본격화했다.
외부의 압박과 내부의 기술 발전이 맞물리며, 정부는 기존 독점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점진적 경쟁 구조로의 전환을 추진하게 된다. 그 첫걸음이 바로 1988년 체신부가 시행한 '공중전기통신사업자 업무영역 조정지침'이었다. 이 지침을 통해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데이터통신은 상호 영역 진입이 가능해졌고, 이후 유선망 내 경쟁 구도가 본격화됐다.
데이터통신은 전용회선망 구축을 허용받으며 체력을 키울 기회를 얻었고, 전기통신공사 또한 비음성 영역 진출이 가능해졌다. 음성서비스는 국제, 시외, 시내로 구분되어 다수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조성되었다.
무선통신 부문, 즉 이동통신 시장 역시 변화의 기류를 타게 된다. 당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로, 무선호출기와 차량전화를 전담하는 정도의 제한적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이동통신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흐름이 확산되면서, 한국 정부도 이동통신의 자립과 경쟁 체제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87년, 체신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이동통신 자립 육성 방안 수립을 지시했고, 1988년 1월 14일 '이동통신 전문화 육성 기본방침'을 전달했다. 논의 끝에, 같은 해 4월 30일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독립적인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 지정되며 전환점에 올라선다. 이는 한국이동통신이 단순한 위탁운영 조직에서 본격적인 시장 주체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1988년은 한국 통신 산업 구조가 본격적인 '3자 경쟁 구도'로 전환되는 해였다. 음성·비음성·무선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세 사업자는 이후 유선전화, 인터넷, 이동통신 전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경쟁은 곧 혁신의 자극제가 되었고, 한국은 빠르게 세계적인 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부록: 주요 사건 정리
1984년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분리된 한국데이터통신과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각각 데이터통신과 무선호출·차량전화 분야를 담당하며 3분화된 통신 체제가 형성됐다.
1986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전국 도서지역까지 수동식 전화를 자동식으로 전환해 전국자동통화체제를 완성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으로 통신서비스가 국제 협상 의제로 포함되었고, 미국은 한미통신실무협의회를 통해 한국의 통신시장 개방을 공식 요구했다.
1988년 1월 14일 체신부가 ‘이동통신 전문화 육성 기본방침’을 수립해 이동통신의 자립과 경쟁체제 전환을 추진했다.
1988년 4월 30일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독립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 지정되며 시장 진입 자격을 획득했다.
1988년 체신부가 ‘공중전기통신사업자 업무영역 조정지침’을 시행해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데이터통신 간 상호 영역 진입을 허용하고, 국내 통신시장 경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 <40년 전화 적체 5년만에 완전해결>, 경향신문, 1986.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