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도래
“한계도 불가능도 없다. 청년정신을 실천하겠다.”
1997년 7월 12일 경기한국스포랜드.
64세의 한 어르신이 번지점프대에 올랐다. 장장 40m 높이의 번지점프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뛰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이 번지점프대 역시 그랬다. 나이제한은 55세. 하지만 그보다 훌쩍 많은 노인이 무대 위에 오른 셈이다.
“훌쩍.”
64세 어르신은 위험천만한 번지점프대에서 몸을 던졌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오히려 희열을 줬다. 한국기네스협회는 국내 최고령 번지점프 기록 보유자로 이 어르신을 모셨다.
1997년 당시 PCS 사업권을 획득하고 상용화를 앞둔 시점. 정용문 한솔PCS 대표(사장)의 얘기다. 이 날 정 사장을 따라 도전에 참여한 임직원 34명 전원이 번지점프에 성공했다. 정 사장은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사전에 신체검사를 받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한솔의 청년정신을 보여주겠다는 퍼포먼스였다. 이 같은 사례는 당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1)
1997년 2월 21일, 서울 여의도.
정장호 LG텔레콤 사장이 기자간담회에 나서 전격 선언했다. 정부가 제시한 1998년 1월보다 3개월 빠른 '1997년 10월 PCS 상용화'. 업계는 술렁였다. 아직 기지국도, 네트워크도, 단말기도 충분치 않은 상황. 그러나 LG텔레콤은 강행을 선택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일단 뛰어야 한다"는 배수진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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