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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Nov 24. 2016

애플 아이폰 국내 상륙기 : 아이폰6S까지

아이폰에 대해 이것저것 살펴보려고 한다. 일단 공개 및 출시, 가격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아이폰6S까지다. 


2007년 아이폰 등장, 국내 출시 전 스토리

국내 아이폰이 첫 도입된 때는 2009년 11월 28일이다. 국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후부터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지만 그 전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아이폰이 세상에 빛은 본 때는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다. 당시 故 스티브 잡스가 직접 휴대폰을 제작하겠다며 골몰했을 때다. 미국 이통사 AT&T와의 비밀 회동 등의 사전 작업을 통해 공개된지 6개월만인 6월 29일 판매가 시작됐다.


IT제품군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다. 물론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때때로 맞아 떨어질 때가 많다. ‘모든 라인업의 첫 제품은 사지 마라’라는 말이다. 역시나 1세대 아이폰은 최적화가 덜 된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아이폰OS의 등장과 앱스토어의 보급, 멀티터치의 혁명은 ‘아이폰 쇼크’라는 트렌드를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 


실질적으로 대중화의 물꼬를 튼 제품은 2세대 모델인 ‘아이폰 3G’다. 2008년 7월 11일 출시됐다. 1세대의 경우 2G 네트워크를 사용했고, 2세대 모델은 3G 네트워크를 사용해 끝에 ‘3G’가 붙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 6월 8일에는 완성도를 더 높인 ‘아이폰3GS’가 등장했다. 아이폰을 논할 때 간혹 “’S’가 붙은 제품을 사야 한다”라는 말이 있기도 한데, 이 때부터 통용됐던 말이다. 당시 ‘S’는 ‘Speed’를 의미했다.


국내 첫 아이폰의 별명은 '담달폰' 2009년에서야 상륙


당시 KT 김우식사장(사진 왼쪽)과 대한민국 1호 아이폰 개통 고객(허진석)이 쇼 아이폰 개통 행사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KT)

2007년에 공개됐던 아이폰이 국내서는 왜 2009년에서야 도입됐을까? 여러 가지 속설이 있기는 하지만 명쾌하지는 않다.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우선 ‘위피(WIPI)’ 얘기부터 해야 한다. 


국내서는 무선 인터넷 플랫폼인 ‘위피’가 존재했다. 휴대폰에는 모두 위피가 적용됐다. 위피를 통해서 통합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통합된 플랫폼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게 이유였다.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기에도 편하다는 논리다. 다만 이러한 통합화는 자칫 갈라파고스를 일으킬 수 있다. 고집이 심하면 아집이 될 수 있다. 


초기 의도는 훌륭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됐다. 국내 피처폰 시절은 이통사 중심으로 형성됐다. 해외에서는 콘텐츠에 대해 전문 퍼블리셔가 있는 반면, 국내는 이통사가 퍼블리셔 역할을 대신했다. 진입장벽이 높아 이미 진입한 업체만 승승장구였다. 이를테면 위피에 맞춰 개발자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이통사가 결제방식을 도입하고 포탈에 올리는 과정을 거쳤다. 진입한 개발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생태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 앱스토어의 존재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위피를 가진 국내 기득권층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방통위는 2009년 4월 1일부로 위피를 폐지했다. 아이폰 도입의 장벽 하나가 사라진 때다. 


또 하나. 위치정보법 적용 여부도 문제였다. 국내는 휴전(?)이라는 특성상 위치정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설왕설래했던 위치정보법 적용 여부는 이통사가 이용약관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해결했다. 


조심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당시 국내 휴대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이통사의 밀약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이어졌다. 위피도 있었지만 국내서는 유독 외산폰에 대해 냉랭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는 휴대폰을 제조하는 굴지의 회사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퍼즐은 KT가 가지고 있다. 당시 SK텔레콤에 밀려 만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KT(당시 KTF)는 반전을 꾀할 승부수가 필요했다. 애플의 그간 행보도 KT를 독려했다. 애플은 버라이즌 대신 2위 이통사인 AT&T와 손을 잡았고, 일본에서도 NTT도코모가 아닌 소프트뱅크와 협력했다. 1위 사업자보다는 반전을 꾀할 후발주자와의 결합 시너지를 고려해왔다. 


‘담달폰’이라는 오명이 있긴 했으나 결국 KT는 2009년 11월 28일 아이폰3GS 모델을 국내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아이폰3GS는 큰 인기를 끌며 100만 대 가까운 판매량을 보여줬다. KT가 아이폰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전례 때문이다. 

광화문 KT사옥 1층에 위치한 올레스퀘어에서 아이폰4 런칭파티에 초청받은 고객들이 오전 8시 카운트다운 하는 모습(사진=KT)

아이폰 쇼크, 2011년 SKT 참전


아이폰3GS가 아이폰의 대중화 물꼬를 텄다면, 아이폰4는 대중화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아이폰4는 2010년 6월 8일 공개된 이후 24일부터 1차 출시가 이뤄졌다. 국내는 KT가 단독으로 9월 10일 출시했다. 가격은 아이폰3GS와 동일한 81만4000원부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에 맞서기 위해 윈도모바일 기반의 ‘옴니아’로 응수했다. 하지만 ‘옴니아’는 비하하는 의미의 ‘옴레기’라고 불릴 정도로 큰 타격을 입고 몰락했다. 절치부심한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로 선회, 현재까지 삼성을 대표하는 모델인 ‘갤럭시S’ 1세대 모델을 내놓게 된다. 아이폰4의 출시 지연이 계속되면서 반사 효과를 얻은 갤럭시S는 아이폰 판매량을 누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KT의 아이폰 공세는 무섭게 번졌다. 소위 ‘아이폰 쇼크’라 부를 정도로 국내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결국 SK텔레콤은 아이폰 도입을 추진, KT보다 늦은 2011년 3월 16일 아이폰4를 정식 도입했다. 한 국가에서 복수 이통사가 아이폰을 내놓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 말이다. 


(사진=SKT)


아이폰4S부터는 SK텔레콤과 KT 간의 불꽃튀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대규모 행사를 개최, 가입자를 끌어모으는데 전력을 다했다. 아이폰4S는 ‘빼빼로데이’인 2011년 11월 11일 국내 도입됐다. 비가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폰4S를 구매하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 타는 곳은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였다. LG유플러스는 당시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외산폰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유럽식 GSM 방식으로 ‘아이폰’을 설계했기에 2G CDMA를 채택한 LG유플러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물론 애플이 GSM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미국 이통사 AT&T와 함께 버라이즌에서도 아이폰을 공급하기로 결정, 버라이즌에 맞는 CDMA망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별도로 내놨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파수 대역에 발목이 잡혔다. 애플이 설계한 2G용 아이폰은 800MHz와 1.9GHz 주파수 대역의 리비전.A 통신규격을 지우너했는데 당시 LG유플러스는 1.8GHz 에서만 리비전.A를 서비스하고 있었다. 


SK텔레콤은 자사 고객들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아이폰4S를 이용할 수 있도록 11일 0시에 맞춰 을지로 본사에서 개통 행사를 진행했다.(사진=SKT)


항상 그랬지만 아이폰 국내 도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이폰5는 2012년 9월 12일 첫 공개된 후 21일 1차 출시됐다. 국내는 전보다 더 늦은 12월 7일이 돼서야 SK텔레콤과 KT를 통해 판매가 시작됐다. 


이유는 LTE 때문이다. 아이폰5는 LTE를 사용할 수 있는 첫 모델이었다. 국내 LTE 네트워크망에서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전파인증도 지연됐다. ‘담달폰’의 악몽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간의 고난에 피로도가 누적된 탓이었을까. 아이폰5 이후부터 국내서는 아이폰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내외부적으로 진통을 겪었다. 2013년 10월 25일 출시된 ‘아이폰5S’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국내 아이폰 점유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더불어 출시된 ‘아이폰5C’도 미미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대화면 아이폰의 탄생, LG유플러스 참전


LG유플러스가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 iPhone6(아이폰6)와 iPhone6 Plus(아이폰6+)를 31일 공식 출시했다. (사진=LGU+)

상황이 반전된 때는 2014년이다. 아이폰은 그간 고집했던 4인치 화면 크기를 버리고, 4.7인치와 5.5인치로 더 커졌다. 대화면을 선호하는 국내 사용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모델이었다. 게다가 외산폰 무덤으로 불렸던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팬택의 몰락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국내 아이폰 부활의 큰 영향을 미쳤던 사실 하나는 LG유플러스의 참전이었다.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골치를 앓았던 LG유플러스는 LTE를 통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LTE를 시작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장애로 지적된던 통신규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LG유플러스의 참전으로 아이폰6는 국내서 출시된 아이폰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인 78만9800원으로 책정됐다. 물론 그 전에 아이폰5C가 있었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첫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의 출현으로 애플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회복, 당시 2위였던 LG전자를 강하게 압박했다. 2014년말에는 애플이 LG전자를 압도하는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LGU+)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6S와 아이폰6S 플러스는 2015년 9월 25일 공개돼 국내서는 7차인 10월 23일 이통3사를 통해 출시됐다. 가장 비싼 가격인 86만9000원, 99만9900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되기는 했지만 완성도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S’ 시리즈 답게 충분한 성적을 나타냈다. 


by Ca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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