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부. 제2차 주파수 경매
2013년, LTE 전국망이 완성되며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 구도는 기술에서 자원으로 이동했다. 이통 3사는 더 이상 속도나 커버리지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졌고, 이제는 남은 주파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하는 관건이 되었다. 주파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토지’였다. 같은 기술이라도 넓고 좋은 땅을 가진 쪽이 훨씬 많은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고, 이용자는 그 품질을 체감했다. 당연히 세 회사 모두가 이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장은 복잡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가 주파수 경매의 주관권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넘겨받으면서, 행정 체계가 정비되기도 전에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혔다.1) 정부 내부는 조직 통합으로 뒤숭숭했고, 업계는 그 혼란을 틈타 각자의 논리를 정부와 여론에 심어 넣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KT는 인천 위너스호텔에서 ‘KT 스터디워크숍’을 열고, 자신들이 1.8GHz 대역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정한 경매를 원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매물을 시장에 내놓고 경쟁하게 해달라, 사전에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불공정”이라는 메시지는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었지만, 그 속내에는 “이번에도 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2)
이에 맞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공동 전선을 폈다. 두 회사는 1.8GHz 대역이 KT의 기존 LTE 주파수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그 대역이 경매에 포함될 경우 KT에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KT는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아도 인접대역 병합만으로 네트워크 품질이 두 배로 오른다.” 즉, 경쟁사 두 곳이 2차선 도로에서 트래픽을 나르는데 KT만 4차선 도로를 갖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공정 경쟁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방어였다. LTE 시대의 첫 주도권을 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KT의 반격을 막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주파수 경매는 계속 미뤄졌다. 5월에서 6월로, 6월에서 다시 기약 없는 연기로 이어졌다. 업계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정부의 부담도 커졌다. 그러던 중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공정성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두 가지 원칙 아래 8월까지 주파수 경매를 마무리하겠다. 사업자가 필요한 주파수는 대가를 내고 가져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불투명했던 일정이 드디어 명확해지자 업계는 오히려 더 들끓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경매 대신 분배 방식을 검토 중이라는 풍문이 돌았고, 업계 관계자들은 각자의 유리한 시나리오를 흘리며 여론전을 벌였다. 언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경매 방식이 뒤집힌다”는 익명의 제보가 흘러나왔다.3)
정부는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검토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남긴 3개 안에 미래부가 2개의 추가안을 더해 모두 5가지 할당방식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방통위의 1안과 2안은 인접대역을 제외한 기존 주파수만 경매 대상으로 삼는 방안이었고, 3안은 인접대역인 1.8GHz 15MHz폭을 포함하는 단순 확장안이었다.4) 여기에 미래부가 LTE 품질 균형과 신규 사업자 진입 가능성을 고려한 두 가지 대안을 더했다. 주파수는 과학이자 정치였다. 어느 안이 선택되느냐에 따라 수조 원의 가치가 오갔고, 세 회사의 주가도 출렁였다.
5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소비자 권익보호와 주파수 효율적 활용 방안’ 토론회는 사실상 공개 로비전의 무대였다.5) 이통3사 주파수 담당 임원들은 각각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워 의원들을 설득하려 했고, 국회 복도는 전쟁터처럼 달아올랐다. 미래부는 매일같이 각 사의 의견서를 받으며 밤샘 검토를 반복했다. 결국 어느 날 아침, 미래부 주파수정책실 문 앞에 한 문구가 붙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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