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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Nov 28. 2016

팬택! 회생하기를, 시리우스부터 베가팝업노트까지 역사

삼성전자와 애플, LG전자를 얘기했으니 팬택을 빼놓을 수 없겠다. 조만간 보급형 스마트폰을 국내 출시할 예정이어서 더 정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팬택의 부활을 바란다. 


응답하라 1991 팬택 - 직원 6명, 자본금 4000만원


팬택의 시작은 미약했다. 1991년 당시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은 직원 6명과 자본금 4000만 원으로 팬택을 설립했다. 이 후 1992년 4월 무선호출기 내수 및 수출 판매를 시작했다. PP X01 시리즈가 첫 제품군으로 꼽힌다. 시작은 비록 작았을지는 몰라도 성과는 대단했다. 1992년 매출 28억 원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본 팬택은 1997년 CDMA 단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세를 확장시켰다. 


1997년 CDMA 이동전화 단말기 생산을 시작한 이후 같은해 6월 시티폰인 CT-2 플러스를 출시했다. 1998년에는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같은해 12월 ‘IM-700’을 내놓게 된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은 팬택은 2001년 팬택보다 규모가 더 컸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하고 GSM 단말기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으로부터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 때부터 ‘스카이(SKY)’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6년 당시 박병엽 팬택 부회장 (사진=팬택)


물론 팬택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해외 진출을 너무 서둘렀다. 결국 팬택은 2007년 워크아웃을 맞았다. 다행히 팬택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갔고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당시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에 안착하는 등 맹위를 떨쳤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 다윗의 질주


팬택은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인 ‘시리우스’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했다. 당시 89만9800원이라는 고가의 가격이 책정됐다. 구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설계된 모델로 3.7인치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퀄컴 스냅드래곤이 장착됐다.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팬택의 첫 스마트폰 '시리우스'


2010년 당시에는 이통사가 휴대폰 유통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동일 모델도 이통사에 맞게 각색됐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SK텔레콤을 통해 출시한 ‘갤럭시S’는 KT에서는 ‘갤럭시K’로, LG유플러스에서는 ‘갤럭시U’로 다운그레이드돼 판매됐다. 팬택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 이후 KT를 통해서는 ‘이자르’를, LG유플러스에서는 ‘미라크’를 내놨다(‘미라크’는 SK텔레콤에서도 판매됐다)


이 와중에 기념비적인 모델이 등장했다. 2010년 7월 30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베가’다. ‘베가’는 이후 제품명이 아닌 팬택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발돋움하게 된다. 가격은 92만7300원으로 비쌌다. SK텔레콤 ‘베가’ 모델은 KT와 LG유플러스를 위해 ‘베가 Xpress’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배우 차승원이 모델로 등장한 팬택 '베가' 광고사진 (사진=팬택)


2010년 당시 팬택은 라인업 구성을 프리미엄 ‘베가’, 여성 특화폰 ‘이자르’, 보급형 ‘미라크’로 가져갔다. 물론 라인업 대로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LG전자와 정면대결을 선택한 팬택이 ‘베가’를 계속해서 밀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10일 팬택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 애플의 ‘아이폰’을 견제하기 위한 프리미엄 전략폰 ‘베가 레이서’를 이통3사 동시 출시했다. 광고모델로 이병헌을 선정, 콘서트 및 스포츠카 페라리 경품 등 대대적인 마케팅 투자를 감행했다. 투자만큼 결실도 봤다. ‘베가레이서’는 누적판매량 180만대를 달성할 정도로 팬택 내부에서 높은 판매량을 보유한 제품으로 기록됐다. 


팬택 베가레이서 (사진=팬택)


‘베가 레이서’의 성공은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팬택 박병엽 부회장의 승부수와, 직원들의 포기를 모르는 열정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일화로 당시 1.2㎓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한 ‘갤럭시S2'에 맞서기 위해 더 높은 클럭속도를 갖춘 스마트폰 제작으로 선회한 팬택은 계속해서 퀄컴 측을 찾아가며 AP 성능 향상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퀄컴 측도 팬택의 포기를 모르는 집념에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박 부회장 뿐만 아니라 주요 임원들이 직접 미국 퀄컴 본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2011년 7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4세대 통신 롱텀에볼루션(LTE)를 상용화하면서 팬택도 LTE폰 준비를 서둘렀다. LG전자보다 근소한 차이로 ‘베가 LTE’를 SK텔레콤으로부터 먼저 내놨다. 팬택은 ‘베가 LTE’를 통해 사용자경험(UX) 브랜드 플럭스(FLUX)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이후 SK텔레콤과 KT 공용 모델인 ‘베가 LTE M’과 LG유플러스를 위한 ‘베가 LTE EX’를 차례로 소개했다. 


팬택 베가 LTE


팬택은 기세를 몰아 2012년 5월 11일 이통3사를 통해 2세대 모델인 ‘베가 레이서2’를 출시했다. 퀄컴의 LTE원칩이 탑재된 모델로, 팬택을 20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베가레이서2는 글로벌 사정에 맞게 변형돼 미국과 일본까지 뻗어나갔다. 


팬택 베가 레이서2 (사진=팬택)


팬택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초기 LTE 시장에서 팬택과 LG전자는 판매량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에 대해 LG전자 옵티머스 LTE2보다 품질면에서 더 낫다며 삼성전자 ‘갤럭시S3’를 경쟁상대로 꼽기도 했다. LG전자가 의문의 1패를 당했을 때다. 


재밌는 사실은 이후 팬택의 행보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가 출시된 2012년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 ‘베가 R3’를 삼성전자 본사 앞마당인 서울 강남 ‘M스테이지’에서 공개했다. 항상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신제품을 공개했던 전례를 미뤄봤을 때 이례적인 행보였다. 


‘베가 R3’는 한 손 사용성을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고질적으로 지목됐던 전력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됐다. ‘베가 R3'에 접목된 ’슈퍼 배터리팩‘은 대용량 배터리와 초고속 충전기술, 2포트 어댑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력 소모는 낮추면서 충전 속도를 높여 사용자가 최대한 배터리에 신경쓰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러한 편의성을 통해 ‘베가 R3'는 출시 4개월 만에 국내 80만 대 판매량을 돌파하기도 했다. 


베가 R3 런칭쇼'V의 역습 콘서트' 2NE1 (사진=팬택)

단언컨대 '베가 아이언'의 등장, 그리고 퇴장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 찾아오듯 팬택의 어려움은 2013년부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이전부터 천천히 진행됐을지도 모르겠다. 늘어나는 부채비율, 줄어드는 판매량에 영업이익이 급락하면서 허덕였다. 


개인적으로 팬택의 최고 제품이라고 평가하는 스마트폰은 2013년 4월 18일 공개된 ‘베가 아이언’이다.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거니와 광고 카피로도 꽤 유명했다. 팬택과 베가 아이언은 몰라도 “단언컨대”라는 말은 기억하는 이가 많을터다. 


'베가 아이언'에 배우 이병헌만 떠오르지는 않는다. 별명과 비슷한 발음의 가수 '백아연(베가연)'도 팬택의 반짝 모델로 나섰다. (사진=팬택)


‘베가 아이언’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일체형 메탈 테두리였다. 일체형 메탈 테두리는 수신 감도를 떨어뜨린다는 단점과 비용 상승 문제, 어려운 가공 방식이라는 한계를 넘어야만 가능한 기술이다. 


당시 팬택 기술전략본부장이었던 이준우 부사장은 2년 이상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제품, 획일화된 디자인 속에서 차별화된 디자인, 사용할수록 가치가 돋보이는 소재를 사용하자는 일념 하에 200여 명의 연구인력이 투입, 6개월 간 선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간에 품질을 더 높이기 위해 5개월의 추가 개발 기간과 200억 원의 추가 개발 비용이 투입됐다. 


이 과정 속에서 5번의 설계 변경, 10번의 디자인 변경을 진행했지만 출시되기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출시 여부조차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0 시간의 연구개발 기간과 3만 번의 통화테스트, 2만 번의 품질 테스트, 중간에 생산 공정까지 바꿔가며 ‘베가 아이언’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혁신 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역시나 해를 넘긴 2014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통3사가 불법 보조금으로 영업정지에 돌입하면서 팬택은 4월 출시 예정이었던 전략 스마트폰 ‘베가 레이서2’ 출시를 뒤로 밀어야 했다. 그 사이 워크아웃에 직면했다. 


워크아웃 중에도 팬택은 꾸준히 새로운 스마트폰을 내놨다. 지문인식을 적용한 ‘베가 LTE-A’, 스타일러스펜 기능을 선보인 ‘베가 시크릿노트’, 사운드 특화 ‘베가 시크릿업’을 차례로 선보였다. 모두 경쟁사와는 차별화를 이룬 제품이었다. 


팬택 베가 시크릿 노트


팬택은 2014년 8월 19일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회생절차를 밟았다. 팬택은 기존 사용자들을 위해 서비스센터를 정상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꾸준히 진행했다. 내외부적으로 팬택 살리기에 나섰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2014년 11월 21일은 팬택의 마지막 스마트폰이 출시됐다. SK텔레콤 전용 모델로 판매된 ‘베가 팝업노트’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팔리긴 했으나 공급량이 부족했다. 초도 생산된 물량이 전부였다. 35만2000원. 공시지원금을 더하면 1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했다. 


팬택 베가 아이언2와 베가 팝업노트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팬택은 ‘베가 팝업노트’를 이어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은 잠시 접어둬야겠다. 2015년 11월 26일 팬택은 법정관리 15개월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마쳤다. 같은해 12월 1일 신설법인 팬택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올해 부활의 신호탄인 '아임백'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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