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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스 Sep 27. 2024

당신 집에선 며느리만 설거지하라는 시어머니

시댁에 가기 싫은 나, 비정상인가요?

명절날 음식 해주시는 시어머니, 설거지만 하면 된다는데.. 아들은 절대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신혼 초. 명절이라 시댁에 내려갔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남편이 도우니 어머니가 한소리 했다. 당신이 아들 키울 땐 설거지 같은 건 일체 시키지 않았다고. 결혼하니 변한 거냐고.


요즘 다 이런다고 해도 역정을 내시고 "이럴 거면 내려오지 마라" 하시자, 나와 남편은 시댁에 가서는 내가 식사준비나 설거지를 하기로 합의를 봤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더 하기로 약속하고. 그러다 결국 집안일 알바비 제도를 도입해 명절에 시댁에서 일한 시간만큼 알바비를 계산해 나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



몇 년이 흘러 흘러 우리는 아이 둘을 낳았고 그날은 4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간 날이었다. 그리고 결혼한 시동생네 부부와 처음으로 함께 시아버지 기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시아버지 기일이자 우리가 떠나는 날 아침에 며느리 둘은 시어머니와 대차게 싸웠다.


시작은 첫째 며느리인 나였는데 아토피인 첫째 아이의 요거트에 어머니가 맘대로 유산균을 넣은 것 때문이었다. 다른 유산균을 사 먹일 계획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이거라도 먹이라며 막무가내로 유산균을 넣으셨고 나는 무력감을 느끼며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 남편보고 뒤를 처리하라고 하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전에도 시어머니를 만나면 여러 차례 말다툼을 했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화를 피한 건데 대화 방식이 바람직하진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아침을 먹고 터졌다. 우리 가족이 먼저 아침을 마치고 시동생네 부부가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지난날 저녁은 이제 막 내려와 지친 동서네 대신 내가 설거지를 했고 그날 아침은 동서네가 하기로 했다. 나는 그런 줄 알았다...

 

아무도 설거지를 안 하고 쌓여있자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둘인데 설거지를 안 하냐" 하셨고

동서와 도련님이 둘이서 상을 치우며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동서가 상을 치우고 도련님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부분에서 어머니가 열이 받으셨다.



여러 대화가 오갔다.


어머니: oo(둘째 아들)이가 하지 말고 oo(며느리)이가 해라

시동생: 같이 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 거야?

: 이럴 거면 오지 말아라

동서: (신경질 내며) 됐어 됐어 내가 할게.

: (옆에서 계속 뭐라고 하심)

동서: (시동생에게) 얼른 (어머니) 데리고 다른 데 가 있어

: 데리고? 개새끼 마냥 데리고라고 했니?

...

(중략)

: 자기 마누라 힘들까 봐 계속 옆에서 그러고 있냐? 지금까지 엄마 힘든 건 안 보였냐?

시동생: 엄마 나는 엄마 도와준 거야.

: 날 도와줘? 이게 내 일이냐? 음식도 내가 다 했는데 설거지도 내가 해야 되냐?

...

: 나는 아들이 설거지하는 거 보면 가슴에서 열불이 나.

시동생: 엄마 그럼 며느리가 설거지하면 괜찮고 아들이 하면 안 되는 거야?

: 며느리가 하면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지. 지금까지 oo(나)이는 혼자 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했지.

...



졸지에 나는 세상 마음 좋은 사람이 됐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왜 그 세월 동안 군말 없이 설거지를 했을까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사다가 구워주신 고기 먹었는데. 참 감사했는데.

소고기에 내 영혼과 존엄성을 판 기분이었다.

딸들이 보고 있는데.

우리 딸들에게는 이런 문화 물려주기 싫다.


우리가 집에 올라간 후로 시동생네와 어머니는 남아서 피 터지게 싸웠고

다신 안 볼 것처럼 헤어졌다.


이번 추석에는 지난 기억으로 인해 도저히 힘겹게 내려갈 수 없어서 남편만 내려갔다.

친정에서 아이 둘 보는 것 힘들었지만 어머니를 대면할 걸 생각하면 이 편이 나았다.



"아들은 설거지하면 안 되고

며느리가 설거지하는 건 괜찮다"는 시어머니.

도대체 며느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걸까.

아들은 하면 안 되고 며느리는 된다는 설거지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이며,

나는 이 말을 듣고도

시댁에 가서 밥을 먹으며

설거지를 할 수 있을까.


...

아니면 내가 설거지 하나에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걸까?

'그냥 섬기고 말지,

음식도 다 해주셨는데'

하는 생각에 기꺼이 하고 오면

되는걸까?


애초에 어머니의 아들인 남편과 비교하며

아들과 동등하게 대우해주길 바란

내가 잘못된 걸까?

며느리는 남이니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는걸까?



다음 번 시댁 방문 전까지

마음 정리가 되길...


Unsplash (c) Nathan Duml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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