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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스 Oct 09. 2024

시어머니의 예민함 받아들이기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 시어머니

어머니를 닮은 첫째 아이를 수용하며..


결혼 한 지 8년이 지나고 9년 차가 되어서야, 그리고 7주간 강렬한 동거를 하고 나서야 시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겪어낼 수 있었다.

너무 찐하게 겪어서 좀체 이해할 수 없던 모습을 우리 첫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통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수용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왜 저렇게 까탈스러우실까, 비난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어머니를 닮은 아이를 키워보며, 곁에서 지켜보는 타인도 힘들지만 본인 또한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아이는 돌까지 순하디 순했다. 빡센 수면교육을 통과해 낮잠 밤잠 가리지 않고 누워서 자는 순한 아이였다. 불편하다며 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돌이 지난 후로 아이가 변했다. 유아식을 시작하면서 생우유를 먹고 장이 나빠진 건지 아토피가 생겨 피부가 예민해졌고, 피부의 예민함은 성격까지 세력을 뻗쳤다.



첫째로 감정 기복이 심하다. MBTI T이고 애니어그램 장형인 나는 좋고 나쁨의 기준이 모호해 대체로 감정의 높낮이가 작고, 어떤 일이 좋으면 계속하고 싫어도 끝까지 하는 끈덕한 성격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좋다 싫다의 기준이 감정에 따라 그리고 때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어떤 특정 음식은 항상 좋거나 항상 나쁘다. 하지만 아이는 어제 잘 먹었던 음식을 오늘은 그리고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 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좀처럼 파악할 수 없는 아이를 키우며 오리무중의 감정을 느꼈다.



둘째로 아이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

자기의 기준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 자체만으로 불편하고 불안해한다. 한마디로 까탈스럽다...


우리 아이 어린이집 등원할 때 신발장에 친구가 서서 자기를 바라보기만 해도 불편해서 밀친다...

가까이도 아니고 멀찍이 서있던 친구가 어떤 위협으로 느껴진 걸까? 당최 이해할 수 없지만 내 아이니 어쩌나.

마음을 읽어주고 폭력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말로 기분을 표현하도록 연습시킬 수밖에.


통제 성향이 강한지 물건을 놓을 때에도 각을 맞춰야 하고 밥 먹을 때 식판과 국그릇을 놓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때문에 예민한 사람 눈에 나같이 둔하고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기보다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맞는 행동을 안 하는 불편한 사람이 된다.


둔한 나의 행동, 사근사근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편한 나의 모습에서 어머니는 존중받지 못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가만히 있는데 패시브 스킬로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시댁에 오면 부엌일을 비롯 여러 가지 일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는 명절에 차로 5-6시간 걸리는 시댁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 책상 옆에 걸린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있었는데 같은 학급의 별로 친하지 않았던 이쁘장하고 깐깐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왜 자기 지나가는 길을 막느냐며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나는 당황해서 제대로 사과를 하지도 못하고 별로 큰 불편도 아닌데 왜 저렇게 승질을 내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여자아이가 시어머니와 우리 첫째 아이 같은 성격이었다. 3살인 첫째도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데 8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나의 느린 행동이 엄청 불편했던 거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시어머니 노릇하고 싶고 자기 히스테리를 부리느라 내 맘 상하는 말을 하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 눈치를 보며 참다 참다 터져 나오는 표현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거였다.

나만 힘든 게 아니고 어머니도 (어쩌면 둔한 나보다 예민한 어머니가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이 나에게 적지 않은 위로감을 주었다.





어머니가 바라는 내 모습
-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한다
- 식사 때가 되면 음식을 차리기 전 후로 돕는다.
- 아이들을 잘 챙긴다 (남편한테 재우기, 기저귀 갈기 등을 시키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남편과 육아를 분담하기 때문에 시댁에 와 두 아이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아직 어린아이들 밥을 챙기고 어른들 밥까지 챙기면 하루 3끼만 차리고 치워도 몸이 힘들다. 게다가 아이들 낮잠도 재워야 하고 돌이 안 된 둘째 모유수유도 해야 한다…

짧게 머무른다고 해도 먼 길을 오가고 시어머니를 대하는 게 힘든 일이다. 대화하면서 쌓인 감정을 풀고 싶어도 남편도 시어머니 상대하고 시동생네와 이야기하느라 지쳐 나가떨어져 나는 외딴섬이 된다. 체력 배터리가 채워지지 않고 쭉 떨어져 빨간 불이 뜨고 나의 자제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매번 마지막 날에 일이 터진다.



이제는 다른 기질과 가치관을 가진 시어머니가 불편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수용해야겠다.


시대가 변했다고 어머니의 가치관을 구식으로 여겼는데 어머니 입장에서는 내가 당신의 사상과 문화에 어긋난 별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양보하고 내 편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도 조금 시어머니도 조금 맞췄으면 좋겠다.



27살에 결혼해 어느덧 결혼 9년 차가 됐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명절을 치렀는데 어머니는 늘 음식 준비를 미리 하셨다. 초창기에는 시댁 가서 전이라도 부쳤는데 점점 그것도 안 하고 사 먹는다. 대접받으려고 안 하시고 먼저 아들과 며느리들을 챙겨주신 어머니의 섬김이 새삼 감사하다.   


앞으로 방문 때는 어머니를 섬기기 위해 요리를 해가자. 어머니의 가치관에 부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편에서 그간 차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보답인 거다.


내 아이에게 까다로움과 예민함의 DNA를 물려주신 시어머니. 예민함과 까다로움은 섬세함의 또다른 이름이다. 섬세한 아이는 똑똑하고 야무지며 감정 표현을 많이 해 부모를 기쁘게 한다. 내 아이의 예민함을 대하듯 시어머니를 대해보자. 어머니의 까다로움 이면의 섬세함을 긍정하고 수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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