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남편과 저를 왜 차별하시나요?
시어머니가 친정 엄마 같기를 기대했다
애착 대상의 부재
결혼 후 시어머니를 만나고 겪어보면서 친할머니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정 엄마는 결혼 후 19년 간 시어머니를 모셨는데
내가 중3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할머니의 존재는 우리 집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민하시고 깔끔하시고 아들만 위하고 맞벌이인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실 때면 우리 들으라고 '엄마가 아이들 안 돌보고 늦게 돌아다닌다'라고 핀잔을 주셨던 할머니.
어린아이 눈에 할머니는 우리 집의 평화를 깨는 악마였고 엄마는 불쌍한 피해자였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친오빠와 차별을 받았다.
솔직히 30살이 넘은 지금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시내가~" 라며 나만 나무란 기억,
집을 어질러놓는다고 친구를 집에 못 데리고 오게 했던 기억,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까먹었지만 초2 때 할머니가 휘두른 전기코드에 이마를 맞아 퉁퉁 부은 채로 회사에 있는 엄마에게 울며 전화한 기억이 난다.
나의 주양육자였던 할머니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 그때나 지금이나 - 너무 착하시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시는 분이었지만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턱없이 적었고, 엄마와 단 둘이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학업에만 몰두하며 애정결핍, 관계에 미숙한 어른이 됐다.
할머니와 너무 비슷한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성격, 가치관, 처한 상황 등이 너무나 할머니와 비슷하다.
일단 두 분 고향이 같다.
예민하고 깔끔한 성격도 비슷하시다.
자기 아들을 위하고 며느리는 남편을 잘 보필해야 한다는 마인드도 비슷하시다.
아빠와 남편도 비슷하다.
집안의 장남,
책임감 강하고 주도적인 성격,
시어머니에 대한 부양 부담이 있는 편,
나의 친할아버지와 시아버님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고
친할머니와 시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오래도록 느끼고 계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할머니는 결혼할 때부터 엄마 아빠가 모셨지만 시어머니는 혼자 살고 계시다는 것.
나와 친정 엄마도 비슷하다.
싫은 소리 잘 못하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린 듯하다.
비슷한 점이 많지만 할머니와 시어머니는 다른 분이고
행동양식이나 운명도 다를 텐데
내 안의 불안 기제는 두 분을 동일하게 여기며,
시어머니와 엮일수록 우리 가족이 불행해질 거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마음의 빈자리를 큰 아들로 채우는 듯 해 보이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우리 가정에 방해물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친할머니의 아들 편애와 차별을 보고 자랐기에 시어머니의 아들과 며느리 차별이 우리 부부 사이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부부 사이의 냉기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와는 최대한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 많은 할머니 밑에서 자랐더라면
내가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이유는 어머니의 문제 때문만이 아닌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애착에 대한 갈망과 이전에 겪었던 할머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유별나신 분이 맞지만, 내가 사랑 많은 집에서 태어난 유순한 며느리였다면
그분의 바람에 기꺼이 맞춰드리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혹은 성격이 당찼다면 어머니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며 말씀드렸을지 모른다. 너무 말이 안 통할 땐 어차피 일 년에 몇 번 안 보는 사이니 만날 때만이라도 잘 맞춰드리자 마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머니의 말 한마디("며느리가 설거지하는 건 괜찮다. 아들이 설거지하면 열불 난다.")에 내 존재가 불타일 듯 발끈하며 다시 시어머니를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막막해하며 만남을 회피하는 것은, 내 안에 다뤄지지 않은 상처가 건드려진 것이고 이는 어머니와 대면할 때마다 반복될 것이다.
내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 내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 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를 정신적 물리적으로 학대한 할머니와 일하고 돈 버느라 바빠 정서적으로 나를 못 챙겨주셨던 엄마의 역할을 시어머니에게 요구하고 있던 거다.
며느리가 절대 '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시어머니는 절대 '나의 엄마'가 될 수 없는데. 나는 왜 이제껏 시어머니에게 나의 '친정 엄마'가 되어달라고 요구했던 걸까.
엄마의 따스함을 바랐던 나의 마음을 다독이고 빈 구멍은 시어머니가 아닌 친정 엄마에게 토로하며 기도로 채우기를 다짐한다. 그래야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대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