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같이 잔다는 것의 의미는?
22년도 첫 아이를 낳을 당시에는 수면교육 붐이 일었다. 그래서 39개월 첫째, 16개월 둘째를 태어나서 지금까지 분리수면하고 있다. 하지만 첫째 아이가 만 3살이 넘어가면서 매일매일이 고비이다. 아이가 말로 명확하게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코로나 베이비였다.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쯤 될 무렵 남편, 나, 아이 세 식구가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원래 아이 방에서 함께 잤는데, 태열이 있어 시원해야 하는 아이 방에서 춥게 자다 코로나에 걸리자 그때부터 바로 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홀로 남겨지니 엄청 울었지만 차츰 아이는 혼자 자는 환경에 익숙해져 잘 잤다. 이앓이 시기, 원더윅스 등에 울음이 강하긴 했지만 무사히 잘 지나갔다.
둘째도 수면교육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낳아보니 둘째는 첫째보다 더 순한 아이였다. 잠을 좋아했고 잘 자주어 첫째보다 더 순조롭게 분리수면을 할 수 있었다. 잘 때는 타이니러브 모빌, 자장가 소리, 백색소음 등을 늘 틀어주긴 해야 했다. 그래도 돌이 지나니 지정해 둔 찬양 자장가만 틀으면 잘 자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 둘을 키웠지만 저녁 8-9시가 되면 아이들이 다 자서 나는 육퇴 후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를 잘 재운다는 자신감 혹은 자만심 마저 들기도 했다. 육퇴 후 자유시간은 꿀 같았다.
아이가 36개월이 될 즈음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는 밤마다 엄마아빠를 찾았다. 정해진 수면의식을 마치고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아이는 울었다. 아이는 목마르다, 쉬 마렵다, 자기 전까지 놀 장난감을 가져다 달라, 재밌는 이야기 음원을 틀어달라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댔다.
나는 엄마랑 같이 자는 게 좋아.
아이가 물었다. 어린이집에서는 다 같이 자는데 왜 집에선 엄마아빠와 같이 안 자냐고. 심장이 쿵 했다. 아이의 욕구와 필요를 알고 있지만 들어줄 수는 없었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해야 해서 같이 잘 수 없다고 말한다. 아빤 회사 일, 엄마는 육아 공부와 글쓰기.
아쉬운 대로 아이와 긴긴 이야기 (오늘 하루 어땠는지, 구연동화로 들려준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마치면 약간은 만족한 듯 아이는 나를 놓아준다.
나는 엄마아빠와 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 까지는 함께 잤던 것 같다. 엄마 옆은 내 차지였다. 한번 찐하게 포옹을 하고 엄마 팔이 저릴 때까지 같이 안고 자다 너무 답답해 포옹을 풀면 잠이 들었다. 일하는 엄마와 일대일로 마주 보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엄마는 늦게 퇴근하시고 와서 식사를 하시고 집안일을 하다가 씻고 주무셨다. 나를 재우고 당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맞벌이하시는 엄마와 함께 자는 시간이 소중했다. 하루 중 엄마와 함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잠들어 코를 고시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나도 편안하게 잠을 잤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늘 함께 있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간다. 둘째는 9시 반부터 3시 반까지, 6시간. 첫째는 9시 반부터 5시까지, 7시간 반. 거의 8시간…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다. 아침엔 밥 먹고 등원 준비, 저녁엔 하원하고 조금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고 잘 채비를 하는 식이다. 전업도 이런데 워킹맘은 얼마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을까.
그래서 나는 낮에도 아이들 없이 나 홀로 있는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밤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시간은 내가 육퇴 후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아이들과 떨어져 한숨을 돌리는.
내가 없어지지 않으려면 책 한 줄을 본다거나 원하는 정보를 얻는 동영상을, 하다못해 예능 한 편이라도 봐야 마음이 놓인다.
물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에 쉬어도 된다. 하지만 전업이라도 할 일이 매우 많다. 말씀 묵상, 집안일, 아토피 아이를 위한 음식 챙기기, 외벌이 남편의 짐을 덜기 위한 투자 공부, 생존 운동, 낮잠... 육퇴 후 시간을 포기하기엔 너무 달콤하다.
매일매일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내 몸과 정신, 영혼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전 누리는 부모의 존재와 숨소리는 포기해야 한다. 아침이 오면 엄마를 다시 만날 것이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반복해 왔지만 여전히 무서울 수 있다...
남편 회사가 바빠 육아가 지치는 요즘, 나는 육퇴 후 새벽까지 유튜브 영상을 주로 봤다. 할 일이 있는데 잘 안 되고, 잘 안 되니 스트레스받아 더 영상을 본다. 그럴 때면 아이 곁을 지키지 못하고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미안하다.
우리 엄마는 주중에 없었다. 어린 나는 엄마 품을 대신해 애착이불을 끌어안았다. 그걸 어딜 가든 가지고 다녔다. 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바깥에 외출할 때에도.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애착조끼를 그렇게 좋아한다. 나는 전업맘인데.
그래도 아이와 정서적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우리 대화하자”
라고 아이가 먼저 말한다.
하루 중 좋았던 일, 나빴던 일을 한 가지씩 말한다. 옛날에 갔던 키즈카페에서 논 일을 반복해서 말하기도 하고, 오늘 동생이나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와 싸웠던 일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와 대화하며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만지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을 하도록 돕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집에 있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어릴 때까지는 엄마를 찾으면 언제든 대답해 주고 따스하게 대해줘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을 외롭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엄마들처럼 자녀들을 위해 삶 전체를 희생할 자신이 없다...
육퇴 후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아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처럼 가족들이 다같이 자지는 않지만 그래도 잠자리 대화를 하며 아이들이 가족의 따스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분리수면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둘째 아이가 "엄마 가지마" 라는 말을 하게 되는 때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