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연대기
나는 결혼 전까지 철벽녀였다.
남편은 나의 철벽을 통과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연애까지는 마음을 열기 참 어려웠다. 그런데 한번 마음이 열리고 연애를 시작하니 결혼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연애 결심이 곧 결혼 결심이었다.
나는 왜 철벽녀가 되었을까.
철벽녀 ...
철벽을 치지만 외롭다. 상처가 있다.
사람에게 상처가 있어 보호하려고 벽을 친다.
하지만 나도 외로웠고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짝사랑을 숱하게 해 본 짝사랑 중독자였다.
나는 왜 사랑을,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모두가 그렇지 않았을까?
처음에 아이들은 모두 잘생기고 예쁜 아이를 좋아한다.
그러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난 후, 점점 눈을 낮춰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난다.
내 성격, 가치관, 취향과 맞는 사람. 내 성격, 가치관, 취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사람.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 나에게 걸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등등.
나는 그렇게 이상형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큰 트라우마를 겪었던 것 같다.
평범한 90년대 생 여자의 유년시절 이성에 관한 기록들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1)
우리 집은 보수적인 편이었고 엄마, 아빠, 할머니, 2살 터울 오빠, 내가 있었다.
할머니가 씻겨 주셔서 오빠와 나는 6-7살 때까지 같이 목욕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오빠와 한 방에서 같이 잔 거 같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꽤나 늦게까지 오빠와 같은 방에서 잤다. 할머니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나와 오빠가 따로 자려면 방이 4개여야 했는데 그렇게 넓은 집에 살 수 없어서 계속 같은 방에서 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방이 생겨 따로 자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는 오빠와 혀를 맞대는 내기 같은 걸 했다 (...)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을 하면 극혐이지만 오빠가 돈을 준다고 했나.. 하여튼 실제로 몇 번 맞대기도 했던 것 같다. 커서 생각해 보니 오빠가 어디에서 키스라는 걸 알아가지고 와서 연습이라도 한 건가 싶다... 이처럼 종종 동생은 언니, 오빠의 마루타가 된다...
(2)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네를 좋아해서 그네를 하염없이 타고 있었다. 그때 어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오빠가 지나갔는데 내가 그네를 타다 실수로 그 오빠의 중요부위를 발로 까버렸다(...) 그 오빠는 얼굴이 빨개지며 화를 냈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티비 드라마나 다큐에서 남자가 여자 옷을 강제로 벗기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나도 그런 일을 당할까 겁을 먹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섭고 기분 나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오빠는 내 아래 중요부위를 옷 위로 한번 만지고 지나갔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 지 몰랐다. 옷이 벗겨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고 그 사건을 친오빠한테 말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3)
어려서부터 나는 드라마 키스신도 좋아하고 이성적 호기심도 있었는데 그걸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친오빠와 곧잘 이야기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일절 그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인가, 내 옆자리에 앉는 남자 짝꿍이 윗도리를 앞뒤로 뒤집어 입고 왔다. 나와 뒷자리에 앉은 친구 여자애가 놀려댔고, 그 남자애는 당황해하며 옷을 돌려 입고 있었는데 우리는 또다시 살이 보인다며 놀려댔다. 그때 다른 여자애가 왜 그런 걸 가지고 놀리냐며, 우리 보고 변태냐고 쏘아붙였다. 그때는 성에 대한 관념이 생겨날 때라 아이들끼리 '변태'라고 놀리는 게 유행이면서도 그 얘기를 들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를 변태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그 말을 듣자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민망해졌다. 마치 진짜 내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 후로 나는 집 밖 공적인 공간에서 남자아이를 놀리거나 성적?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을 스스로 엄격히 검열하게 되었다.
(4)
초등학교 3-4학년 때 진한 짝사랑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말 전학 간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그 아이는 키도 크고 얼굴과 눈이 동그랗게 잘생기고 바이올린을 켜는 분위기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잘 알지 못했고 친하지도 않았지만 금사빠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다른 예쁜 여자애나 인기 있는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질투가 났다. 나는 평범한 외모에 조용한 아이였고 그 아이는 잘생겼고 인기 있었다. 말 한번 건네지 못하고 오며 가며 눈빛만 보내고 설레했던 나날이었다.
그러다 발렌타인데이가 되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남자애에게 초콜릿을 준 날이었다. 여러 가지 초콜릿을 마트에서 사서 상자에 넣었다. 내 이니셜을 적은 편지도 썼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술이 든 초콜릿을 샀다.'라는 이상한 편지도 썼다. 아침 일찍 등교해 몰래 그 아이 신발주머니 함에 초콜릿을 놨는데 누군가 내가 준 걸 봤나 보다. 아니면 내 이니셜로 이름을 유추했거나.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하교 후 복도 청소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 아이와 그 아이 친구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이 말을 하게 된다. '쟤가 얘 좋아한대.' 그 아이는 부끄러워하며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말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고, '쟤가 얘를 좋아한대' 인지, '얘가 쟤를 좋아한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얘 = 그 남자애, 쟤 = 나). 실제로 몇 년 동안 어쩌면 저 아이도 나를 좋아했을 수 있다 라며 그 사건을 미궁에 빠뜨렸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걜 좋아하지만 걔는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뼈 아픈 진실을 외면하려 했고 내 진심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그 아이의 스펙이나 조건 상 나를 좋아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세상의 중심이 나이고 나였으면 했던 초 4였기에, '날 좋아해 주는 잘생긴 애가 있을 것이다'라는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짝사랑은 내가 또다시 전학을 가며 끝났지만 짝사랑의 수치심은 은은하게 무의식에 남아 '내 감정은 절대 표현하면 안 된다', '남을 좋아하는 건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감정이다'라는 잘못된 신념이 생겼고, 남들에게 표현하지 않고 내 마음속으로만 꽁꽁 간직한 채 짝사랑에 대한 이상한 집착을 키워갔다.
표지 이미지: Unsplash의Shiva Marda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