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타의적 철벽녀가 된 이유 (3)

철벽이 무너지다

by 캔디스

글로 나의 짝사랑 일대기를 정리하니 내가 참 얼빠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잊고 있던 사실)

이쯤에서 나의 이상형을 살펴보자.

내가 눈이 작아서 그런지 눈이 큰 남자

피아노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감성적인 사람

자기 일을 잘하거나 능력이 있는, 나를 이끌어줄 사람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종교도 같아야 함. 신앙고백이 진실되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막연하게 생각한 이상형인데 놀랍게도 현 남편과 일치한다.

내가 남편과 맞지 않는 요소는 기억에서 삭제해 버린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 ㅎㅎ


(10) 철벽 4

대학교 1-2학년 때 짝사랑 열병을 앓았다. 정말 시름시름 앓았다. 그 아이는 수학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아이였다. 머리가 좋으면서 감성적인, 약자의 편에 있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어 곁을 내주지 않아 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곁을 맴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플러팅이니 작업 기술이니 그런 건 그에게도 나에게도 없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도 이전보다 한 단계 나아진 건 멀리서 이상향을 바라만 본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꽤 친했다. 솔직히 외모도 투박했고 별로 인기가 있진 않았지만, 내 마음 전체를 아프게 하고 상하게 할 만큼 그 아이가 가장 멋져 보였다.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으면 병이 나지만 나는 그 아이와 진전된 관계를 꿈꿀 수도 없었다. 명목상 친구 사이에 내 마음을 표현했다가 사이가 멀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날 좋아하도록 만드는 건 내 능력 밖의 일 같았다. 나보다 더 예쁜 선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를 좋아할까 아닐까. 그의 문자 한 통과 행동 하나하나에 내 마음은 널뛰기했다. 이 마음을 더 키울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불을 끄려 노력했다. 뭘 해보지도 못하고 마음에서 지우기에 급급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나뉜다. 표현이라도 한번 해봤어야 했나. 그건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펴보지도 못한 마음을 접어야 했다. 아니, 좋아하는 마음 한번 표현하는 게 뭐가 그리 큰 일이라고. 사람의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인 건데. 그 당시엔 내 마음을 표현해 그 관계를 깰 위험을 무릅쓰기에 내 감정이 너무 작고 하찮아 보였다. (철벽 4: 자신감 결여. 현실가능성 낮다고 여김. 주변 관계가 다 어그러질 거라는 걱정)


(11) 철벽 5: 무너진 철옹성

남편을 만났다. 남편을 만난 건 긴 스토리다. 따로 몇 편을 써야 할 만큼. 짧게 쓰자면...

그는 나를 1학년 때부터 눈여겨봤고 2-3년 동안 마음을 키워가며 기다렸단다. 내가 짝사랑을 접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을 때 (그는 내 짝사랑 사실을 몰랐다) 고백해 왔다. 고백하고 사귀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 기도를 해보고 교제 준비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교제 준비 시간을 거쳐 (이 용어는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서 자주 쓰는 말이었다. 우리는 더 나아가 교제 준비를 준비했었다) 2012년 6월 1일 사귀기 시작했다. (철벽 5 뚫림)


내 철벽을 뚫을 만큼 그는 단단했고 끈질겼다.


1. 오랜 기간 동아리, 과 선후배로 관계를 다졌다. 아무 사이 아니었을 때도 시험공부를 많이 도와줬다. 나 도와주며 밤새다 정작 본인 시험에 늦었다고도 한다...

2. 힘들 때 연락할 수 있고 도와주는 관계가 되었다. 선물을 주고 싶으면 내 주변 친구들에게 모두 주었다고 한다. 매점을 쏘는 것 등.

3. 많이 맞춰주었다. 연애하며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는 카페도 자주 안 가고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썸 탈 때 같이 하던 아침 QT도 평소에는 잘 안 하던 것. 나는 신앙생활 할 때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걸 지키는 편인데 남편은 나보다 많이 자유로웠다.

4. 가장 중요한 것. 교제를 준비하다가도 나는 연애까지 발전할 당위성을 못 느꼈다 (아마 스킨십?). 사람 대 사람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두려웠다. 나의 세상적인 마음, 속물적인 생각,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은 내 모습까지... 변덕스러운 내 마음, 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나를 계속 좋아해 줄 수 있나? 이런 고민 때문에 사귀는 걸 미뤘다. 그러다 내 한마디로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줬고, 나는 헤어져도, 이쯤 해도 어쩔 수 없겠다며 마음을 접으려 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가 상처를 입었지만, 내 마음의 속도는 자기보다 느리지만, 끝까지 사랑할 거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거라는 말을 했다. 크리스천에게 이보다 더 큰 사랑을 바랄 수 있을까? 나를 예수님처럼 사랑하겠다는 남자 앞에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철벽은 무너졌다. 이 사람을 믿고, 이 사람과 동행하신 하나님을 믿고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의 첫 연애였고 3년 반 동안 교제하고 2016년 2월에 결혼을 했다.


나를 3년 넘게 좋아해 주고 (그 사이 다른 사람을 좋아했는지는 함구하기로 하자) 내가 자신이 없을 때에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는 남자를 나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돌아보니 그는 내 이상형에 부합했고 현재 우리는 그를 닮은 딸아이 한 명과 나를 닮은 딸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9년이 지나 10년째 매일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게 나의 현실이다.




여전히 나는 철벽을 치고 산다. 그런데 철벽과 짝사랑/공상은 한 단어 두 얼굴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과 데이트 하면 어떨까?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20대에 연애를 한 번만 하고 결혼을 한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제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는데 연애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사실 n년 동안 이런 마음을 나도 알아채지 못한 채 묵혀왔다. 그러다 내면아이 육아 브런치북을 쓰면서 내 마음을 파고들면서 이런 내 감정을 맞닥뜨렸다.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애가 둘인 유부녀인데.


하지만 고맙게도 나의 철벽이 나의 상상에 제동을 건다. 그간의 철벽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종합한다. 1)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2) 나는 그에게 진정한 내 모습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 3) 그놈이.. 그 놈이다...

결론이 났다. 지금의 결혼 생활을 잘 꾸려가는 게 제일 낫다.


아이를 키우며 고갈되는 내 정신력과 스타트업에 다니느라 늘 바쁜 남편에게 서운해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남편과 터놓고 이야기하며 풀 일이지 다른 사람을 찾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실은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워 육체적/정신적 바람을 피우지만, 그게 과연 천년의 사랑일까? 한순간 행동을 다스리지 못한 바람이겠지.


가장 가깝고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고 나의 어떠함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나도 그의 어떠함을 인정하고 사랑하는-이렇게 되는데 9년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멀었다.)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그간 아이 둘 키우느라 현실이 메말랐어서 관계가 소원했지만 다시 관계를 불사르기 위해 데이트의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내가 이생에서 만날 남자는 이 사람이 유일하기에 (중학생 걔는 잊어보자), 그 사람이 나의 남자 세상의 전부기에, 그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보려 한다. 이 생애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이 사람을 탐구해보려 한다.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의 Alina Lutskov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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