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타의적 철벽녀가 된 이유 (마지막)

습관성 짝사랑의 이유

by 캔디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습관적으로 남자들에게 눈이 가고 사랑에 빠진다. 머릿속에서 나는 팜므파탈로 변해 마음먹은 남자를 꼬시는 시뮬레이션을 돌리지만 현실에서는 관심 가는 남자 앞에서 어버버 얼어버리는 철벽녀다.


자잘한 경우를 제외하면 초등학생 때 1명, 중학생 때 2명, 고등학생 때 1명, 그리고 대학생 때 1명을 짝사랑했다. 짝사랑 기간도 2-3년 정도로 긴 편이었다. 요즘 학생들이 아이돌을 덕질하듯이 한 사람을 우상화하며 덕질했다. 짝사랑 상대와 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친하지 않아서 신비스러웠고 성스러웠고 내 마음을 꽉 채우게 좋아했다.


내가 왜 그렇게 짝사랑 중독자가 되었나 생각해 봤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거나 부모님과 정서적 교류를 많이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 밝지 않았고 미래에 꼭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다. 성격이 조용해 친구가 많지도 않았다. 나에게 짝사랑은 그야말로 단조로운 일상에 도파민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 심장이 뛰고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는 그야말로 연애 숙맥이기에 이어질 가능성이 1도 없었지만 그가 언젠간 나를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삶의 동기부여를 삼았다.


남편은 이렇게 공상을 좋아하는 나를 현실세계로 끌어내려준 인물이다. 한 사람만 애달픈 도달할 수 없는 공상인 짝사랑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찐사랑으로 바꾸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분명 이성의 사랑이었지만 어찌 보면 종교적 사랑이기도 했다. 상처받고 거절받아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그 메시지는, 내가 미워하고 외면해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떠하더라도, 그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계속 바라보겠다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오해하지 마라. 우리가 썸의 단계를 지났기 때문에 이 사랑이 믿음직스럽고 신뢰감 있게 다가왔지 모르는 사람이 그랬다면 무섭고 소름 돋을 일이다.)


그는 내가 세상의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그만의 공주였다. 과연 누가 그만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부부의 연을 맺고 있다. 나도 받은 만큼의 사랑을 주고 있고.


철벽녀에게 필요한 건 남자의 깊은 확신인 것 같다. 쉽게 마음이 변하는 (내 마음조차 내가 모르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눈을 고정한 채 나만을 바라봐주는 사람. 철벽을 무너뜨릴만한 변함없는 도끼질. 변하지 않는 마음에 확신이 생겼을 때 나는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다. 아니, 저절로 마음이 스르륵 열렸다. 이효리가 결혼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나? '내가 한평생 한 남자만 바라볼 수 있을지 바람날까 봐 무서웠다'라고. 나도 여전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릴까 겁난다. 이건 천성이다. 하지만 별로 걱정은 없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어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안다. 새로운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기면 내 일상에 단조로움을 느끼는 시그널로 알고 남편을 탐색한다. 이제 내가 덕질하는 상대는 남편이다. 남은 반평생 그를 탐구해 보자.



ps. 글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살면서 크고 작은 성추행을 경험했다. 나는 애정결핍+성추행의 여파로 길 가다가 반대편에서 남자가 지나가기만 해도 긴장한다. 그런데 잘생긴 편이면 더 긴장한다. 긴장하는 한편 그들의 눈에 띄기를 바란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최근 유퀴즈 300회 특집에 출연한 이효리의 말이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불안해진다. 사랑을 주는 게 오히려 맘이 편안하다. 사랑받기 원하는 을에서 사랑을 주는 갑이 되는 것.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축복하는 것. 점점 더 관계에서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한다.

12 철벽녀(3).png 출처: tvN Joy 유튜브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의 Hanna 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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