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곡점 (1)

준비단계 - 변함 없이 응원해주는 사람

by 캔디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은 남편을 만난 후로 왔다.


그는

나를 가장 지지해 주는 사람

나를 가장 믿어주는 사람

내가 기대를 저버려 실망하기도 하지만 계속 기대를 품는 사람

였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과 선배였던 그는 내가 전공 공부로 어려움을 겪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사귀기 전부터 도와주었는데 사귀고 나서는 학과 공부 코칭은 물론 어떻게 하면 전체 학점을 높일 수 있을지 공부 시간 대비 성적 향상 비율을 계산해 주는 등 효율적으로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네임드 공대였던 우리 학교에서도 찐 천재라 불리는 너드남이었는데 그가 나 같은 평범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건 미스터리다.


대학원에서 연구실 생활을 할 때에도 내가 다닌 랩은 재정상황이 안 좋아 연구비를 거의 못 받고 다녔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면 부모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할 줄 알았던 나는 마음이 안 좋았다. 적은 양의 용돈을 받으며 돈이 부족해 먹고 싶은 음식을 못 사 먹거나, 후배들 밥 사줘야 하는 경우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때도 지금의 남편은 우리의 데이트 통장을 후배들 밥 사는 데에 보태 쓰라며 개방해 주었다. 고마운 사람...


대학원 생 때 결혼을 했으니 결혼 후에는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을 일이 없었다. 남편은 혼자 살 땐 지출할 일이 거의 없어 매달 돈이 쌓였는데 결혼한 후부터 지금까지 재정이 늘 빠듯하다. 나의 소비 습관을 돌아봐야 하나보다...


취업 후 둘이 2년 남짓 열심히 회사에 다녀 돈을 벌었다. 그러다 나는 빡센 업무량과 왕복 3시간 출근길을 견디기 힘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발목 인대를 다쳤다. 회사에 대한 마음이 사라질 때쯤 코로나가 터졌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20대 내내 이공계 공부를 하고 제약회사에서 일했는데, 독서 모임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을 만났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아는 학교 선배에게 창업 제안을 받았다. 독서를 위한 앱, 독서모임 플랫폼을 만들어 사람들이 독서와 가까워지도록 돕는 일이었다. 1년 정도 열심히 했다. 건강, 그리고 임신 때문에 그만두었지만 책과 글쓰기는 내 삶에 계속 남아있다. 첫 아이가 태어난 22년엔 아이를 키우는 에세이를 블로그에 연재했고, 23년에는 기독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책을 내게 되었고, 그 덕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매년 브런치 북을 하나씩 쓰고 있다. 시어머니와는 늘 에피소드가 넘쳐나서 줄곳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다. 23년엔 우리 집 인테리어를 도와주시느라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머물며 있었던 일을, 24년엔 동서를 맞이해 시댁 방문했다가 큰 사건이 생겨 나의 내면아이를 돌아보는 글을 썼다. 25년엔 내면아이와 육아를 다루는 현재 이 브런치 북을 쓰고 있다.



올해는 남편과 결혼한 지 9주년, 10년 차이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 준 그.

내가 바쁘게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집안일과 아이 양육에 집중할 때에도 내가 고생하는 걸 알고 고마워해주는 그.

그 사랑이 고마워 눈물 날 때면 그에게 물어본다. '왜 나와 결혼했느냐'라고.


그럴 때면 항상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특별하다'라고.

자기가 특별하고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니 나도 특별하다고.


그럴 때면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나는 평범하고 평범한 게 좋다고, 평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왔다.

남편이 말하는 특별함이 나는 버거웠다. 나는 그렇게 평범함에 나 자신을 가두고 싶었나 보다.

이 땅에 태어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껍데기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채 위장된 평화를 누리고 싶었나 보다.

이 땅에 온 이유 같은 거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 한 몸 건사해 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세상은 나에게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교회 수련회에서 보게 된 한 환상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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