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곡점 (2)

우연한 계기

by 캔디스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듣던 말.

'너는 크게 될 아이야'

'너의 미래에 돈을 많이 벌 거야'


모태신앙으로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을 바라는 기복주의 신앙은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거부하려고 했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꿨다고 하신다.

좋은 꿈이건 나쁜 꿈이건 대부분 맞았다고 하신다.

남편이 어렸을 때 어머니는 물이 많은 곳에서 노는 꿈을 꿨다고 큰 재물을 얻을 거라고 말씀하셨단다.


처음에는 웃고 넘겼지만 이제 그 꿈은 남편, 그리고 나를 버티게 하는 꿈이 되었다.

남편이 억대 투자 실패를 했을 때도, 다니던 대기업 계열사 회사가 흡수합병 돼 갈 곳을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평온할 수 있었다.


남편은 원체 예민하고 일하는 데 있어서 똑 부러진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으로 재능이 있었고 지금도 그 어려운 AI 연구를 한다.


나는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모범생이었는데

내가 뭘 잘하는지 몰라, 특별한 재능이 없어 공부를 한 케이스다.

그것도 확실한 꿈이 있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늘 사람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살았다.

퇴직과 임신 출산 후에도 육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그런데 매년 평범하게 갔던 수련회에서 뜻밖의 음성을 들었다.


2024년도 가을 수련회.

하필 아이들이 아파 3박 4일 수련회를 뒤에 1박 2일만 참석했다. 즉 마지막 밤 집회만 참석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을 바꾸는 말을 들었다.


'평안'

'내가 너를 크게 쓸 것이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건 오랜만이었다.

영적으로 민감하신 담임 목사님께서 기도인도를 하셨는데 기도 중 두 손을 들어 성령님의 선물을 받으라고 하는 등, 이전에 갔던 수련회와는 다른 기도 인도 흐름이었다.


나는 평안이라는 말,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다.


평안이란 말은 이제껏 편하지 않고 나의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사랑받을만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지난날의 나에게 해주신 말로 들렸다.


'네 인생을 내가 귀하게 받을 것이다.

너는 나의 일을 하게 되어있다.

비록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우러러보지 않을지라도.'


인정중독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에 대해 뭐라고 하든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그 후로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그분의 음성에 더 귀 기울였다.

그전까지는 매너리즘에 의해, 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젠 더욱더 내밀한 교제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올해 2025년 봄 수련회, 또 다른 환상을 보았다.

이젠 더 직접적으로.


나를 옭아매는 할머니의 시선. 그 시선의 그물에 매여있는 나.

나를 검열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시선들.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된 나.


어렸을 때부터 내 자존감을 짓밟으셨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 밑에서

나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 눈에 모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평범성을 강제받은 나.

내 안의 나는 자유롭고 싶고 나를 표현하고 싶고 마음껏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


어쩌면 그건 진짜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할머니의 시선.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나를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평범해질 수 없는 존재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그분의 자녀로서, 나는 이미 그분의 신성을 지닌 존재다.


날 옭아매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채,

나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

그것으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그날 비로소 할머니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keyword
이전 13화인생의 변곡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