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eoul
2008년, 이른 여름 남산 근처의 회현 시범아파트 부근을 걷고 있을 때였다.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지긋이 우릴 바라보는 그 녀석이 있었다. 우린 멋대로 '시범냥'이라고 부르며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넸다. '시범냥'의 기운을 받아서였을까. 우리는 예정에 없던 시범아파트 단지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우리가 눈치도 채지 못한 사이, 그가 우리 곁에 다가왔다. 놀이터에서 막연히 시간을 보내던 그때, 내 앞을 지나가는 '시범냥'님. 그리고 우리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린다는 듯, 조심스레 우리를 지켜보았다.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한 산책을 시켜주겠다는 듯.
'시범냥'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고 그가 이끄는 방향으로 시범아파트를 돌아 남산 어귀를 걸었다. 처음 만나는 풍경에 우리는 감탄하면서도, 우리가 '시범냥'없이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심한 듯 우릴 한 번씩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우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그 날부터였을까. 나는 여행에서 냥이님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그가 가자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길을 잃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그곳에 오래 살았던 존재들이며 나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고 믿기에. 그들을 따라 골목 어느 구석구석을 다니는 것은 내 여행의 한 부분이 되었다.
Location : Seoul, Korea
Date : June 29, 2008
Format : Digital (Color)
Camera : Epson R-d1
Lens: Helliar 15mm f4.5 / Color Skopar 35mm PII
Editing : Epson PhotoRAW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