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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Jun 12. 2019

노키즈존의 조건 : 노약자석이랑은 좀 다르니까

  언젠가부터, 지하철에 ‘노약자석’이 별도로 지정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노약자석은 별도로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연스레 노약자석 쪽으로 전철을 탄다. 노약자석이 아닌 곳에 서있으면 자리를 양보받으려는 심산인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노키즈존'이 늘어난다고 한다. 아직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다. 많아지지 않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키즈존이 아무리 생긴다 한들, 노키즈존이 아닌 곳에서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소란을 피울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라고도 하고 아메리칸 인디언의 격언이라고도 하는 이 말에 백번 공감하는 바다. 엄마와 아빠 오롯이 둘이서만 모든 육아를 해결하는 일은 실로 고되다. 말 못 하는 아기와 작은 아파트에 갇혀 하루를 보낸 엄마는 우울감을 해소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시골, 아침이면 일을 하지 않는 할머니와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들,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서도 잘 노는 아이들이 원두막 같은 곳에 모인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다 같이 술래잡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겠지. 칭얼대는 아기는 엄마뿐 아니라 다른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이 돌아가며 달래준다. 볕이 좋은 날도 있고 비가 내리는 날도 있다. 추운 날은 누군가의 집이나 마을 회관에 모여도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얘기일 수 있다.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할 일 없이 원두막에 모일 사람들도 없을 거고, 더군다나 동네 할머니들의 시시콜콜한 참견과 잔소리까지 들어가며 아기를 보고 싶은 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여름, 수원의 통닭 골목에 갔다가 줄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통닭집 옆 슈퍼마켓에 들어가 물을 사려는데 4살쯤 됐던 딸이 뽀로로 음료수를 사달라고 보챘다. 본래 아이가 사달라는 걸 막는 편은 아니지만, 그 날은 이미 너무 많은 젤리와 사탕을 먹은 터라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무조건 ‘안 돼’라고 말하거나 억압적으로 못하게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면 항상 애를 먹는다. 그때 슈퍼 아저씨가 굵은 목소리로 짧게 말씀하셨다.  ‘누가 이렇게 칭얼대는고?’ 딸애는 거짓말처럼 투정을 멈췄다.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준 아저씨가 참 고마웠다. 딸을 이기지 못하는 아빠를 대신해준 것이다.

  한 번은 친구 커플과 식당에 갔다. 우리 딸과 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어 종종 만나는 편이다. 홀이 넓고 좌식으로 된 생선구이 식당이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신나게 떠들더니 급기야 테이블 주위를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계속 타일러도 말이 통하지 않아 아무래도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참에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가 아이들의 눈을 보며 ‘이 놈들, 조용히 해야지’라고 했다. 작지만 따끔한 톤이었다. 아이들은 비로소 얌전해졌다. 상황을 정리해준 아주머니 역시 너무 고마웠다. 눈을 흘기며 못마땅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면 더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을 겪으며 자라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래 친구들 뿐 아니라 언니 오빠들, 그리고 어른들까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스스로 느끼고 깨닫도록. 집에서도 역시 엄마, 아빠의 영향을 고루 받아야 한다.

  내 성격은 주로 어머니를 닮았다. 타고난 성격은 아버지와 가깝고 만들어진 성격은 어머니와 가깝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어머니는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주변 사람들을 함께 사는 존재가 아닌 이겨야 하는 존재로 보는 사람이다. 시장에서 하반신이 절단된 사람이 수레 같은 데 엎어져 구걸하러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서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라고 하시는 분. 원래 뼛속까지 순둥이던 나와는 잘 맞지 않다. 그래도 어린 나에게 어머니의 말이나 행동은 절대적이었다. 또 아버지의 험담을 자주 하셨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는 ‘어쩜 그렇게 아빠를 쏙 빼닮았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중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넌 아빠를 닮아서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라는 말이다. 융통성이 뭔 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 말이 싫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런 고백을 했다. 어머니와 부딪히는 게 힘들어, 나를 키우는 방식이 마음에 안 맞아도 내버려 뒀다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자라면서 아버지가 꼭 그릇된 건 아니라는, 어머니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지했다면 훨씬 더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봤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엄마와 아빠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육아를 할 때 아이에게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의 기준과 아빠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겠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대가족에서 언니, 오빠, 삼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랑 부대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범위를 확장하면 온 마을 사람이 된다. 자유로운 가정의 아이는 무뚝뚝한 정육점 아저씨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엄격한 가정의 아이는 상냥한 꽃집 이모를 참 좋아할 수도 있겠다.  


  나는 육아 전문가도, 심리학자나 교육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또 하나의 성긴 생각을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오지랖이 달갑진 않다. 나와 아내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사실은 대부분 우리 둘로는 역부족이다. 역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어떤 부모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아이들을 통제한다. 그렇지 못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귀여운 것들 이리 와봐라 하며 사탕을 쥐어주는 넉넉한 할머니, 이 녀석 식당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하는 까칠한 이모, 이 놈들 조용히 못할까 하며 장난스럽게 꽉 안아버리는 털보 삼촌. 염치는 없지만 이렇게 온 마을이 조금씩만 참견해주시면 한결 수월할 것 같다. 그러니 아무쪼록 잘 좀 부탁드립니다.

  원래부터 얌전한 아이를 키우거나, 엄하게 자식 교육을 시키는 부모, 그러니까 아이들을 썩 잘 통제하는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한심할 수도 있겠다. 그들이 노키즈존의 최대 희생양이다. '우리 아이는 식당에서 어른처럼 얌전히 있는데, 너희 같은 것들 때문에’

  그런데 아이들이 어른처럼 돼야 한다면, 차라리 노키즈존이 있는 게 나을 것도 같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노키즈존이 아닌 곳에서는 실컷, 아이답게 떠들어도 되기.

 

  가끔 식당에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너무 다그치는 부모들을 보면 나는 이런다.

  “거 참, 좀 떠들어도 괜찮으니까 적당히 내버려 두세요.”

  속으로만 이런다. 참견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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