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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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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Jun 14. 2019

딸은 좋다 : 아빠는 괜찮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적당히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의 번호 키를 누를 수 있게 된 후로, 문을 여는 건 항상 딸의 몫이다. ‘띠띠띠띠’ 전자음이 들리고 딸이 먼저 들어온다. 살며시 고양이처럼 들어올 때도 있고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뭐라고 조잘댈 때도 있다. 고무장갑을 벗고 가보니 책을 한 아름 안고 있다. 동네 친구네와 도서관에 갔다 왔다고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도 빌려온 책을 살펴본다. ‘딸은 좋다’라는 그림책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의 선택인지 딸의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제목만큼이나 그림도 마음에 들어 단단한 재질의 책 표지를 열어봤다. 엄마와 딸의 찬가이다. 딸을 다 키우고 시집보낸 어느 어머니의 사진첩을, 아니 그보다는 그 어머니의 추억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나는 딸을 바라 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운동을 못하는 나를 닮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만약 아들을 낳아 키운다면 아이와 캐치볼을 하는 게 내 작은 로망이었다. 그런데 나는 캐치볼을 못한다. 학교 다닐 때 체력장 종목 중 멀리 던지기가 있었다. 다른 것도 별로 잘하지 못했지만 이 공 던지기는 정말 최악이었다. 한 손으로 잡기에는 조금 큰, 표면이 움푹움푹 파여있는 검푸른색의 공은 항상 내 발밑에 내리 꽂혔다. 더 이상 체력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공을 던지는 요령을 조금 터득했다. 더 큰 문제는 공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남학생들은 교실에서 지우개를 빌릴 때 주로 던져서 주고받는다. 잘 받지 못하는 나는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기 위해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공이라고 잘 받을 리 없었다. 대학생 때 동기들이 잔디밭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나도 한번 끼어 봤다. 한두 번은 그럭저럭 주고받았다. 세 번째쯤이었나, 상대는 공을 힘껏 높이 던져 올렸다. 나는 떨어지는 공을 받으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글러브를 낀 손을 내밀었다. 돌덩이 같은 야구공은 내 이마와 부딪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하하. 그게 내 마지막 캐치볼이다.

  아내 뱃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기뻤다. 캐치볼을 못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 일은 없겠네 안도했다. 나처럼 부모와 서먹하게 지낼 가능성에서도 한 발짝 멀어졌다. 엄마 뱃속에서 막 나온 딸은 울지 않았다.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처음 보는 세상을 응시하는 듯했다. 우는 건 내쪽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심지가 굳은 아이 같아 이미 대견스러웠다. ‘승’ 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었다. 너무 여자애 같이 들리지 않는 이름으로.


딸은 좋다.
목욕탕에 같이 가서
서로 등을 밀어 줄 수 있으니까.
딸은 엄마가 자기 등을 밀어 줄 때처럼
고루고루 정성스레 민다.
엄마는 속으로 생각한다.
우리 딸이 다 컸다고.
아빠는 볼 수 없는 풍경


  내게 딱히 목욕탕에 관한 추억은 없다. 간혹 아빠를 따라서 가기는 했지만 뜨끈한 탕에 함께 들어간다고 서먹함까지 풀릴리는 없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 마신다는 바나나 우유는 마셔보지 못했다. 흰 우유는 몇 번 맛봤는지도 모르겠다.

  승이는 찜질방에 가는 걸 좋아한다. 정말로 찜질이 좋은 건지 찜질방에 가면 컵라면도 먹고 맥반석 계란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찜질방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여자 탈의실과 탕을 거쳐야 한다. 나와 떨어져야 하는 순간이다. 아마 평생을 나와는 함께 할 수 없는 일. 물론 내게는 귀하디 귀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딸과 함께 탈의실에 가고 탕에 간다면, 온탕에서 멍하니 망중한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딸의 옷을 챙기고, 행여나 미끄러질까 봐 신경 쓰다 보면 목욕을 마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원하다 한들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어릴 때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딸은 아빠를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내 딸은 오직 엄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릴 때 나는 좀 신경질적인 아빠였다. 별 일 아닌 일에 소리를 지르고 아이를 다그쳤다. ‘사랑의 매’는 세상에 없다. 매질을 할 때 감정이 가미되지 않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매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일관된 기준이나 신념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무섭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승이는 엄마의 사랑으로 자란다. 나도 아내를 보고 배워 조금씩 따라 하며 천천히 변하지만, 엄마의 순도 높은 사랑을 흉내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딸은 좋다.
친정에 들르면
하루 종일 꽃밭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목욕탕에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엄마를 훨씬 좋아하는 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딸은 좋다. 아내와 딸은 평생의 단짝이다. 나는 괜찮다. 원래부터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니까. 엄마와 딸이 하루 종일 꽃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옆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같이 들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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