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서 더욱 사소하지 않은 것들

by Aarushi

오늘밤은 아따맘마다. 마치 너로 정했다.라는 비장한 마음으로. 퇴근 후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뒤 토너를 토닥토닥 바른다. 촉촉함과 피부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향기, 실내 슬리퍼를 솩솩 끌며 노트북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화이트 구스 이불을 살포시 덮고 쿠션으로 자세를 잡아 편안한 자세를 만든다. 아무 생각 안하고 싶을 때, 좀 편안하고 싶을 때, 좀 안락하고 싶을 때 잔잔하게 틀어놓는 것이 도라에몽과 아따맘마 시리즈다. 오랜만에 아따맘마 시리즈를 틀었다.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틀어놓아도 음소거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침대로 와선 핸드폰으로 아따맘마를 잔잔한 볼륨으로 틀어놓은 채 글을 쓰고 있다. 이 밤의 고요가 나는 이토록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런 안정감에 대한 애정이 있다.


창문은 열어 놓은 터라 얼굴은 시원하고 차가우면서도 안은 포근한 그 온도와 바이브가 내겐 익숙하다. 침대밖은 온통 겨울의 그것이고 침대 이불 안 만큼은 따뜻한 그것. 그것의 대비가 날 더 파닥이게 한달까. 오랜만에 아따맘마를 틀었는데 역시 싱거우면서 이토록 재미있을수가 없다. 아리 아빠와 엄마의 웃음 포인트가 취향이다.


이렇게 이불 안에 있으면,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행복이란 게 별건가. 이러면 된 거지.하게 된다. 어릴적엔 참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온통 이해되는 것들이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절로 살아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나아감을 선택한다.


서른 초반ㅡ 파리의 겨울을 지리한 방황과 고독 속에서 보냈던 터라 겨울이면 유난히도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즈음 어느 rue를 걷다 찍은 사진인데 이 밤 나는 하염없이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뚜벅뚜벅 그러나 내 안은 한없이 시끄럽게 요동쳤던, 그 요동침에 어쩔 줄 몰라하던 방황하던 내가 사진과 함께 있었다.


토너를 다 사용한 차제에 같은 토너에 향을 다른 걸로, 장미향으로 선택해 사봤는데 청량하니 쏙 마음에 든다. 글쓰면서도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그 잔잔한 향에 절로 기분좋아지는 게 있다. 이 이야기로 갔다가 저 이야기로 갔다가 무작위한 의식의 흐름 속에도 곧장 제자리를 찾는 걸 보면 무작위함 속 질서라는 걸 생각하게 되고 결국 돌고 돌아 인간, 나, 삶, 사랑으로 귀결되는 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나이가 곧 마흔이어도 도라에몽과 아따맘마를 보는 나, 그러고보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그것은 늙지 않는 것이 아닌가.싶다. 몸은 물질이니 변하고 우리몸은 나이들어가지만 우리의 안은, 내면은 늘 그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직관적인 앎이 인다. 부쩍 거울을 보더라도 얼굴이며, 몸은 분명 나이 들어가고 있지만 내 눈 안의 그것, 내 안의 그것은 나이들지 않는구나. 그 자신의 사유와 내면의 그것을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유지하는 것 역시 실은 자기 자신의 몫이겠다.


몸의 나이듦은 필연이요, 내 정신의 늙음은 선택이 아닐까.

마음이 이상해.싶으면 곧장 몸을 들여다본다.

몸이 이상해.싶으면 곧장 내 안을 들여다본다.

그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난 어느 해, 옷깃을 야물게 여밀곤 파리 어느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나. 또각또각 나 자신의 구두소리가 유난히도 슬프게 들렸던 그 어느 밤이 오랜만에 날 찾아왔다. 당시를 회상하며 옅게 미소짓게 되는 건 짙은 향수보다도 그때의 나에게 보내는 토닥임, 안아줌, 연민, 고마움, 사랑이다. 여전히 고독 속에 살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이 고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불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이 밤의 고요를, 내 방 안의 고요를 더욱 다정하게 한달까. 살갑게 한달까. 내게 남은 생이 얼마일지 나는 모른다. 유한한 삶이지만 그래서 더욱 감사하게 되는 마법. 초연하게 침착하게 차분한 마음으로 물흘러가듯 바람에 살랑이듯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 밤이 지나면 날이 밝아오겠지. 날이 밝으면 밤이 오겠지. 낮과 밤은 하나다.

밤이 두렵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다.


세상은 인간이 통찰할 것들로 가득하다.

언제부터인가 절로 이는 나의 사색과 사유가 그저 반갑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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