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환경, 내가 만나는 사람들, 일... 모든 걸 바꾸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부쩍 그러한데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부쩍 느끼고 있다. 오후에 일을 시작하는 터라 내게 오전 시간이란 내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이요, 에너지를 높이는 시간이요, 나와 즐겁게 대화하고 잘 노는 시간이 된다. 아침을 잘 챙겨먹고선 집을 나섰다. 햇빛이 비치는 곳은 따뜻하고 여전히 가을풍경이다. 오전에 일하는 곳 근처에서 산책도 좀 하고 카페에 들러 글 하나 쓰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운전하고 가는 길, 즉흥적으로 방향을 틀어 이따금씩 내 안식처가 되어주는 한적한 드라이브길로 차를 돌렸다. 가는 길 20분, 오는 길 20분 왕복 40분이면 되는 거리인데, 사찰 주차장을 돌고 나오면 되는 코스다. 저 멀리 산능성이가 시원시원하게 보이고 한적한 굽이굽이 시골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의 향연에 절로 내 마음도 춤추게 되는 곳이다. 지난 번 자른 단발 머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한동안 묶고 다녔는데 어느새 조금 자라 풀어도 자연스런 정도가 됐다. 오늘은 드라이를 야물게 하고 향수도 톡 뿌리고 분위기를 살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20, 30대 시절의 생기와 어여쁨은 사그러들었으나 서른 아홉, 마흔 언저리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 분위기 있고 세월의 향이 깊이 밴듯한 안정감이 보였다. 눈망울은 우수에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꽉찬, 그 반짝임을 나는 보았다.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곤 드라이브를 만끽했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차분한 속도로 저 푸른하늘과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온 자연을 침착하면서도 차분하게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보통은 머릿 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가라앉을 때 찾곤 하는데 막상 길을 떠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롯이 드라이브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에 감탄하게 되고 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마법이다.
문득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왔는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흘러옴이란 펼쳐짐일테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데까지 난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했다. 그것마저 온전히 인정하게 된 나이가 됐다.
나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테지. 저 낙엽. 바람, 공기, 나무, 흙이 되어 저이들과 하나가 되겠지....오전의 드라이브는 내게 이런 방식으로 어떤 통찰, 삶의 지혜를 선물했다.
나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는 부분이 큰데, 그 알에서 깨어나지 못해 한참을 방황했던 때도 있었다. 그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선 엄청난 정신적, 내적 고통과 고독이 필요하단 걸 알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여전한데 그럼에도 이젠 그것조차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서 덜어내는, 비워내는 걸 곧잘 하게 되었다. 조금 덜 괴로워졌고 조금 덜 아파할 수 있었다.
지난 시절, 책과 글쓰기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책은 날살렸고 글쓰기는 날 소생시켰다. 책과 고독은 하나였고 나는 그 고독에 완전하게 침잠해 내가 가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지나고보니 나는 나이가 들어 있었고 나이듦과 함께 내면의 나이듦, 성숙을 얻게 되었다.
거울 속 내 눈을 들여다보다 와잠, 누당이 눈에 들어왔다. 심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에너지, 기의 흐름은 곧장 얼굴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20대 중후반 서른 초반즈음 한창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던 시절엔 와잠이 두터웠다. 흔히 애교살이라고 하는 부분이 투툼하고 짙게 되어있어 아랫속눈썹 마스카라를 할 때면 이렇게 투텁네, 통통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남녀간 사랑적 에너지가 가히 높은 시절이었어서 더욱 그랬겠다. 그러다 서른 중반즈음 연애를 멈추고 더욱 내 안에 침잠해 고독에 묻혀있을 당시 와잠의 살이 많이 빠지고 조금은 평평해져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연애운이랄까 연애적 에너지를 이 와잠을 보고 점치곤 한다. 최근 부쩍 나의 와잠이 다시금 차오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어머 곧 연애를 하게 될까?하는 묘한 기대감이 생기고 연애, 이성에 대한 에너지가 오르고 있구나.싶다. 에너지엔 오차가 없다.
마흔의 사랑이라고 해서 다를게 무얼까. 마흔의 사랑이 외려 기대되는 이유는, 갖은 경험 끝에,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독백을 통해 쌓아온 자기 만의 통찰과 삶의 지혜, 인간에 대한 통찰이 비로소 발현되는 시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에서다. 사랑이란 내어주는 것. 사랑이란 상대가 평안하기를,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 뿐이란 걸 말이다. 서로가 가진 것보단 내가 가진 걸 상대에게 어떻게하면 내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오늘 오전의 40여분의 시골길 드라이브는 오후의 나에게 활력과 생의 에너지를 선물했다. 나 자신이 하면 즐겁고 편안한 길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게 날 살게 하니까. 그게 날 숨쉬게 하니까.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니까.
지나온 나의 시절을 상기하면, 나는 미소가 난다. 아주 차분하고 마치 이 세상 다 산 사람인듯ㅡ 마치 이 세상에 굉장히 초연한 듯한 표정과 얼굴의 당김이 있다. 나 자신의 삶에 절로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것.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나는 숨쉬고 있다.
나는 살아있다.
행운이고 기적이고 감사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