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살자

by Aarushi

퇴근 후 주차를 하고 집까지 오는 길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나는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쓸쓸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한밤 주위의 고요함 때문도 있겠고 쌀쌀맞게 추운 이 계절의 날씨때문도 있겠다. 실은 안다. 내 안의 쓸쓸함이란 걸. 고독에 익숙하고 혼자 노는 것이 가장 편안해져버린 나라지만, 이따금씩 밀려오는 고독과 외로움, 쓸쓸함, 씁쓸함, 서글픔 같은 것들이 있다. 그 순간 마치, 내가 사랑하는 고전 작가들이 된 듯, 그들이 씹었을 고독과 외로움에 공감하게 되고ㅡ 그로인해 삶을 통찰하게 한다. 아우렐리우스가 된 듯한, 헤르만 헤세가 된 듯한, 쇼펜하우어가 된 듯한, 니체가 된 듯한, 보들레르가 된 듯한, 고흐가 된 듯한, 카프카가 된 듯한.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결국 혼자구나. 인간은 혼자구나. 각자의 생이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그 누구도 그 자신을 구할 수 없다. 나를 보호하고 구할 수 있는 자,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라고 되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리라.라는 듯한 비장한 각오가 있다. 마흔을 앞두고 나는 지금껏 무얼했나.라는 자책보단 이런거였던가?이런거였을까? 나약했던 그 시절의 나에 대한 연민, 아쉬움 이런 것들이 남아 외려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싶으면서도 어쩌면 내게 지리한 나 자신과의 독대가 그 시절의 나에게 필연처럼 예정된 것은 아니었을지. 이제와서 보니 지나온 나의 모든 시절이 꿈같다. 정말이지 꿈같다. 그것들은 모두 진짜였을까? 하는 자각이 인다.


나이 들어가며 외려 사고 싶은 게 줄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게 날 이롭게하고 단출한 살림살이로 살아가는편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인간관계 역시 줄임으로써 외롭지 않은, 외려 내 안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들이 마흔을 앞둔 내게, 이젠 어엿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내게 유익하다.


서른 초반 역마살이 이렇게 들었을까.싶을 정도로 해외 여행을 자주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해보고 나니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는 걸,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바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단 걸. 지금의 나는 희한하리만치 해외 여행에 욕심이 없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지금 내 삶의 순간순간도 여행이요, 여정아니던가.


스트레스를 좀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날 더욱 명료히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오면 지금의 나는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화나지 않는다.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내가 조금 양보할 수 있어도 괜찮은 정도면 기꺼이 양보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어릴적부터 엄마는 늘 "살면서 조금 손해보고 살아도 괜찮아. 결국엔 다 너에게로 돌아와."라고 하셨다. 20대 광화문 직장인이었던 그때의 나.는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참 버거웠다. 내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더욱 그 시절이 힘들었을거란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면 므흣.할 때가 있다.


가볍게 살아야 한다. 가볍게 살자. 부쩍 절로 이는 내 안의 소리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 스스로가 힘들 때가 많은데 돌이켜보면 그런 괴로움도 다 내가 만들어낸 것이란 걸 알아차리게 된다. 결국 내가 놓지 못하는 거였구나. 내가 그걸 붙잡고 있는 거구나.하는 알아차림이 있다.


어쩌다보니 눈떠보니 마흔이었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정말이지 이토록 찰나였던 것이다.


사랑하며 살자.

친절하자.

다정하자.

단단한 내면을 갖자.

나로 바로 서자.

기대지 말자.


"저 푸른하늘처럼 네 마음도 늘 맑았음 좋겠어."

올해 초 제주에서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들여다본다.


"엄마, 나 꼭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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