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도서관에 들러 책5권을 빌렸다. 차가운 계절, 겨울의 독서만이 주는 감성, 낭만, 즐거움, 고요가 있다. 나의 선택은 대부분 고전이 되는데, 고전문학에 빠져 있을 땐, 이 아름다운 많은 책들의 아주 일부분만을 나는 읽다 죽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그렇게 주말 내내 책은 나와 함께였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책 한 권을 챙겼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선택한 건 늘 옳다. 보조가방에 노트북과 책을 넣었다. 일하는 곳 근처 카페에 왔다. 따뜻한 말차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카페안에서 들려오는 케이팝은, 사람들의 소리는 내게 그 어떤 방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펴 몇 문장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곳에 몰입하게 되는 것,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면 1시간이 훌쩍 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십분 정도 읽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나 사유의 것들로 글 한 편 쓰다 가야지했던 터, 책을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아니되겠다, 책을 내려 놓지 못하겠는 걸! 글쓰기는 다음에!"했다. 책을 읽으면서,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 장으로 옮기는 순간, 글자가 내 눈에 알알이 박히는 순간 알아차려보았다. 나의 숨, 들숨과 날숨의 정도... 이토록 강력한 평온, 고요일수가! 내 마음은 이토록 차분하고 침착할 수가 없다.
그렇게 3장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지금 몇시지?하고선 시계를 보니 딱 1시간이 지나있었다. 1시간이 어떻게 흘렀을까싶을만큼 책을 덮을 땐 마치 1초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눈깜짝할새의 기분이 든다. 이런 걸 보면,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싶고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 계절의 독서는, 오늘의 독서는 눈부셨다. 아름다웠다.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게 했으므로.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내려간 날엔 내 마음이 이토록 침착하게 된다. 명상과 무엇이 다를까. 그토록 몰입하는 순간에도 절로 알아차려지는 것들이 있다. 나 지금 책읽고 있구나. 한글자 한글자가 내눈에 쏙 들어오는구나. 글자 모양들에조차 호기심이 인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보다보면, 저자가 헤르만 헤세임을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그 자신만의 아우라, 분위기, 바이브가 있다.
오늘은 연한 인디핑크 마치 딸기 우유같은 색의 복슬복슬한 반팔 니트를 입었다. 같은 색과 텍스쳐의 얇은 머플러로 목을 따숩게 둘렀다. 쇄골이 보이는 편이라, 쇄골을 살짝 보이는 방식으로 스타일링을 하곤 한다. 진정한 섹시란 드러냄보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란 생각이 있다. 의상도 핑크핑크한 차체에 내 기분도 덩달아 핑크핑크해진 기분이다. 다 내 마음에 달렸다. 18,000원짜리 곰돌이 키링을 3,000원에 세일 하길래 샀다. 브라운 가방에 달았다. 나이는 마흔이나, 내 마음은 여전히 소녀, 어린아이다. 이렇게 아주 작은소품 하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이라면, 기분좋아지고 내 물건들이 더욱 살뜰히 생각된다. 이런 작은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다 나의 몫이겠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이 평온이 분명 깨지고 다시 회복되는 것이 반복되겠지만 그 어떤 것도 그 어느 순간도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걸 알기에 이제 더는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만이 내게 있는 것이다. 조만간 내가 좋아하는, 자주 찾는 통창이 뻥 뚫린 광화문의 그 카페에 가야겠다. 아침 일찍 책 한 권 들고서 그곳에서의 낭만을 만끽해야지. 나의 사색과 사유도 그 낭만과 함께 더욱 짙어지겠지.
"잘 놀다 가요~", "잘~ 놀다 갑니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거부할 수 없는 내 안의 소리일지도. 내 생의 마지막에, 내 마지막 들숨의 순간, 이렇게 말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본래 이곳에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 아닌가. 그토록 우리가 갈망하는 돈조차 싸매고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내가 가진 것 실은 그 어떤 것도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가진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질문과 나 자신만의 답의 교차. 삶은 소풍이라는 말처럼, 정말이지 피크닉이지 않나. 그러니 잘 놀다 잘 즐기다 잘 만끽하다 그렇게 옅은 바람에 실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을. 남은 삶 좀 더 수월하게 심플하게 복잡할 거 없이 가볍게 뭉게구름에 둥둥 떠다니듯 살면 어떨까? 그러자. 이런 다짐을 하게 된다.
짙은 고독 속에서도 빛이 있어야 한다. 고독은 날 성장시켰고 날 이전보다 더 친절한, 더 따뜻한, 더 다정한 사람, 사랑 가득한 사람이 되게 했다. 수년의 고독의 나날들 속, 책은 늘 나와 함께였고 글쓰기를 통해 나의 내면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고 숨쉴 수 있었다. 마치 나의 이 모든 시절이 자연의 완벽한 계획이었던 듯이. 그렇게 나는 지리멸렬한 고독 속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고전도, 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무한함. 내 안의 그것.
수천년이 지나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사랑으로 만들어졌다.